경제·금융

뒤로 가는 금융자율(사설)

정부가 제일은행에 6천억원 규모의 현물을 출자, 사실상의 주인행세를 할 수 있게 됨으로써 금융산업 전체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제일은행이 11월중 증자때 정부가 국채와 주식을 제일은행에 현물출자하고 제일은행은 대신 49%에 해당하는 신주를 발행, 정부에 넘겨주기로 했다. 정부가 보유할 주식은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다. 따라서 정부는 제일은행의 최대 주주로서 인사와 경영에 직접 간여할 수 있다. 이는 곧 제일은행뿐 아니라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정부가 간여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되는 것이어서 주목되는 대목이다. 제일은행을 사실상 국책은행화한 정부의 의도에 적지 않은 의구심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부실화한 은행의 재무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한 것일 뿐 경영 개입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동안 정부가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정부당국자는 기아나 은행의 문제라며 원칙을 고집해오면서 적기에 손을 쓰지 않아 사태를 키워왔다. 위기로 확산되자 뒤늦게 원칙을 포기하고 대책을 내놓았으며 끝내는 직접 개입의 문에 발을 깊숙이 들이밀었다. 제일은행의 실질적 주인이 된 이상 언제든지 인사와 경영에 노골적으로 간여할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의 첫째가 은행간 인수합병(M&A)이고 제일은행이 1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은행의 대형화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수합병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고 정부도 속으로 바람을 부추겼던 일이다. 하지만 인원감축·기구축소 등 걸림돌이 적지 않았고 인위적 개입이라는 비난도 부담이었다. 이제 걸림돌을 뛰어 넘을 수 있게 됐다. 대주주로서 정당하게 개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른 은행에도 압력을 가하는 충격 효과까지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기아 문제에도 떳떳이 개입할 수 있게 됐다. 개별기업의 일에 간여하지 않겠다는 원칙론을 내세우지 않아도 되는 명분을 얻은 것이다. 때맞춰 나온 은감원의 경영개선 권고도 이같은 정부의 의도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정책과 시장 논리를 거꾸로 돌렸다. 금융자율은 후퇴했고 공기업 민영화 정책도 무실화 했다. 정책은 혼선을 거듭함으로써 정부 신뢰가 또 한번 흠집이 났다. 정책 방향에 대한 의구심이 짙어질 수밖에 없다. 확실한 대답과 방향 제시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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