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 달은 죽다 살아난 것 같아요. 이렇게 쉬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피아니스트 손열음(27ㆍ사진)과 마주하자마자 그가 내뱉은 첫 마디다. 그는 지난해 12월 말부터 러시아ㆍ미국ㆍ유럽 대륙을 오가며 수많은 무대에 올랐고, 지난 달까진 예술의전당 첫 독주회와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을 차례로 소화했다. 5월에는 러시아의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유리 바슈메트(60)가 이끄는 모스크바 솔로이스츠와 협연 무대를 가질 예정이다.
숨가쁘게 달려온 '젊은 거장'을 지난 2일 오후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마주했다. 지난달 7일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첫 독주회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이날 '젊은 거장'의 연주는 뭇 사람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 "감정은 한껏 고조됐지만 몸은 지쳐있는 불균형이 싫어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앙코르 곡 연주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다"는 그는 이 자리에서 독특한 퍼포먼스를 곁들여 무려 7곡의 앙코르 무대를 선사했다고 한다. 그는 "앙코르에 대한 부담을 떨쳐버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아리에 바르디 교수의 영향이 컸다"고 했다. 일찌감치 '음악영재' 타이틀을 거머쥔 손열음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2006년부터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아리에 바르디 교수를 사사하고 있다.
"음악의 당위성을 찾아보자는 게 독일 유학의 목표였어요. 세게 치고 여리게 치는 테크닉적인 부분은 하라면 할 수 있지만,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으면 답을 못할 때가 많았죠. 이 같은 질문에도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거든요. 제게 부족했던 이런 부분을 바르디 교수님은 입체적인 생각으로 채워 주셨죠."
독일에서의 수학(修學)은 손열음의 음악적 가치관도 조금씩 변화시켰다.
"독일 친구들은 잘나면 잘난 대로 못나면 못난 대로 거리낌없이 솔직하게 드러내죠. 제 연주를 놓고 많은 분들이 거침없고 당당하다 표현해 주시는 데 본래 제가 그런 성격이 아니거든요. 알게 모르게 독일의 이 같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깊이를 더해가고 있는 손열음이다. 첫 독주회에 이어 그의 짙어진 향기를 또 한번 즐길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다. 내달 29일 손열음은 러시아 일류 실내악 앙상블 모스크바 솔로이스츠와 협연 무대를 갖는다. 모스크바 음악원 출신의 30세 미만의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모스크바 솔로이스츠는 1986년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유리 바슈메트에 의해 창단됐다. 손열음과 바슈메트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손열음은 바흐 피아노 협주곡 1번 BWV1052를 연주한다.
"바흐의 음악은 클래식의 시작이죠. 극적인 효과나 엄청난 드라마가 있는 건 아니지만 평범한 일상성과 그곳에서 비롯된 담백함이 매력인 것 같습니다."
2004년 이후 바흐 피아노 협주곡 1번 BWV1052 연주는 9년여만이다. 손열음은 "새롭게 공부하고 도전하고 싶은 작곡가로 바흐"를 꼽았고 "이번 협연을 계기로 그의 음악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