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위기와 경제정책/폴 A 새뮤얼슨 미MIT대 교수(송현칼럼)

『신이 멸망시키려는 자는 먼저 미칠 것이다』는 속담이 있다. 『장터 귀신은 덮치려는 자를 일단 매우 즐겁게 해준다』는 그리스의 경구는 오늘날에도 들어맞는 것 같다.최근 사례는 태국이고 3년 전엔 멕시코였다. 아마도 내일은 브라질이나 한국일 수도 있다. 그리고 월가에 거품이 일고 있고 투기꾼들과 미국의 호황을 부러워하는 각국 정부의 대규모 자금이 미국으로 유입되고 있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미국도 안심할 수 없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태국과 경제가 가장 잘 돌아가고 있는 미국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까. 과거의 예에 비춰 지난 90∼96년 태국의 경제정책이 지나치게 경솔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루디거 돈부시MIT대 교수는 최근 출판된 저서에서 그 실상을 설명했다. 『태국은 80년대에 연평균 8%, 90년대 전반엔 8.5%, 그리고 지난해엔 6.7%의 성장률을 보였는데 이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의 경우와 비슷하다. 이 나라들의 국민은 낭비를 하지 않아 저축률이 80년대 25%에서 90년대엔 35%로 높아졌다. 이는 레이건 대통령 재임 이후 미국의 저축률보다 몇배나 높다. 월가는 이머징마켓(신흥시장)에서의 뮤추얼펀드(투자신탁) 수익률이 미국에서보다 몇배나 높은 점을 만끽했다. 다만 냉정하고 다소 겁먹은 돈들이 태국에서 빠져나올 때까지였다. 이는 멕시코사태의 재연이었고 태국기업들은 만기가 돌아온 단기어음을 갚을 길이 없어지자 부도를 내고 말았다.』 80년대에 일본식 경영방식으로 호평을 받았던 일본도 부동산 및 주가 거품이 걷히면서 은행·증권사·보험사들의 부도가 속출, 혼쭐이 났다. 한국의 주가도 상황은 비슷하지만 그 정도는 덜한 편이다. 외환보유액이 넉넉한 은행은 통화폭락을 막고 환투기꾼들을 응징할 수 있다. 돈부시교수는 『태국도 초창기엔 방대한 외환보유액을 자랑했고 이는 투기적 공세를 쉽사리 받지 않을 것임을 의미했다』고 지적했다. 태국경제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96년 보고서는 아무런 경고도 담고 있지 않았다. 태국의 국가위험도는 A에 머물렀다. 그러나 상황은 돌변했다. 그 많던 외환보유액은 투기꾼들만 살찌웠을 뿐이다. 태국의 주가가 떨어지자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그리고 싱가포르 들의 통화도 태국에서 발병한 폐렴에 감염되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최대의 피해자는 국내에서 곤욕을 치른데다 해외에서마저 큰 손실을 본 일본의 은행들. 이들의 투자판단은 원래 형편없기로 유명하다. 앨런 그린스펀 미련준리(FRB)의장은 노련하다.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도 골드만 삭스 증권사에서 잔뼈가 굵은 뒤 워싱턴에 입성했다. 나는 그들이 통화주의자들의 다음과 같은 억지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중앙은행은 가격안정이라는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 고성장기조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일 필요가 없다. 특히 월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무시해야 한다. 그것은 중앙은행과 무관한 일이고 헌법상으로도 간섭이 선의든 악의든 용인되고 있지도 않다.』 합리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우선 민주정부와 준독립 중앙은행들의 주된 관심은 장기적으로 가장 타당성있는 실질생산 및 소득에 맞추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인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더 늘리려 하면 급제동을 걸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 기업과 근로소득자에게 모두 나쁜 경우다. 1929∼1930년의 미국, 90∼97년의 일본, 최근의 동남아국가들의 사례는 모두 정부나 중앙은행이 주가 및 부동산가격의 비정상적인 급변에 무관심해선 안된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주가가 떨어질 것을 우려, 통화정책을 안이하게 운용하는 것은 어리석다. 또 경기부양책이 투기심리를 부추길 것이라는 주장에 얽매여 오랫동안 고실업을 방치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이러한 상식적인 권고는 말로 하기는 쉽지만 실행하긴 어렵다. 이게 바로 경제의 현실이다. 현실을 직면하지 않는 사람은 최악의 결과를 감내해야 한다.<노벨경제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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