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5.6 개각] 되돌아보는 윤증현 경제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서울대학교 병원 수면클리닉을 찾았다. 하루에 2시간도 채 못 자면서 피로가 쌓이자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의사가 처방한 약을 먹고 수 개월 만에 처음으로 ‘꿀맛 같은’ 4시간 잠을 겨우 청했다. 윤 장관은 사석에서 “나이를 먹으면 잠이 없어진다”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간 쌓인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따꺼(大兄ㆍ큰 형님)’이라는 별명답게 특유의 선 굵은 리더십을 보여줬던 윤 장관이 마침내 무대 뒤로 퇴장한다. 87년 개헌으로 현재의 5년 단임 대통령제가 탄생한 이후 역대 최장수 경제장관이라는 영광의 주인공이었지만 재임 내내 ‘지분 없는 경제수장’이라는 한계를 실감하며 서비스산업 선진화 등 개혁과제를 마무리짓지 못한 한계도 드러냈다. 2년 3개월간 재임한 윤 장관이 받아든 성적표는 ‘A-’에 가깝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취임 직후 무리한 ‘747 공약’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해 성장률 전망치를 -2%로 다시 설정하며 위기 극복의 신호탄을 쐈다. 대공황 이후 최악으로 평가된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을 목표로 사상 유례없는 슈퍼 추가경정예산(28조4,000억원) 편성, 만기도래 신용보증 지원분 전액 연장 등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놨다. 지난해에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전세계 금융경제 리더십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바닥에서 출발해 천장을 찍은 ‘운장’(運將)이라는 평가까지 얻었다. 주어진 과제를 잘 마무리한 성과는 컸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스스로 “이 정부에 지분이 없다”고 토로했듯이 윤 장관이 직접 설계한 정책들은 대부분 지리멸렬했다. 영리병원 허용, 일반의약품(OTC) 약국외 판매로 대표되는 서비스산업 선진화가 대표적 사례다. 가계부채 관리, 한계기업 구조조정 역시 위기 때 해결해야 할 타이밍을 놓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G20 의장국으로 빠른 위기극복을 위해 출구전략에 미적댔고 그 결과 올 들어 4%대의 물가 고공행진을 자초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금융정책을 직접 책임질 자리는 아니지만 최근의 저축은행 사태에 있어서도 존재감 있는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한계도 있다. 올 들어 윤 장관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했다. 물가폭등의 책임을 묻는 국회의원 질책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다”고 말했고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에서는 “사람은 회자정리(會者定離)다. 맡으면 물러날 때도 생각해야 한다”며 사퇴 의사를 내비쳤다. 윤 장관의 공과를 떠나 관가 안팎에서는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경제발전의 A부터 Z까지 책임지고 당근과 채찍을 손에 쥐었던 개발연대 때의 인사풀은 윤 장관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그 맥이 끊겼다는 것. 재정부 장관에 새로 취임한 박재완 장관 내정자는 행정고시 23회로 1979년 공직에 입문했다. 과거처럼 강한 카리스마로 금융과 실물을 호령하던 ‘관치경제’를 경험한 인사는 정부 내에서도 이제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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