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경제논리와 위인전


소년은 오늘도 이길 때까지 싸우겠다는 생각에 수업이 끝나자 5학년 교실 앞으로 달려가 싸움을 걸었다. 장가를 간 두학년 높고 덩치가 컸던 친구에게 이미 수차례 맞은 뒤였다. 한 대 때리면 몇 배로 되맞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덩치 큰 친구는 아무리 맞아도 대드는 소년에게 결국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소년은 자라서 성인이 됐고 승부근성이 강했지만 늘 '신용' 앞에서 겸손했다.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낸 비결에 대해 "내가 가진 최고의 기술은 신용"이라고 말했다. "신용, 신뢰라는 것은 자본보다 훨씬 중요하다. 돈이 없어도 사업은 할 수 있지만 신용 없이는 사업을 할 수도, 성공할 수도 없었다."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자서전 속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건설이 설립 후 처음으로 공사한 다리인 낙동강변의 교령교 복구공사다. 한국전쟁 이후 물가가 공사를 수주할 때보다 120배나 올라 이 공사의 수지를 맞출 수 없게 됐고 결국 정 창업주의 자산, 일가 친척의 집까지 위협받게 됐다. 그러나 그는 '신용은 지켜야 한다'며 공사를 감행해 1955년에 감당 못할 적자를 내며 완공해냈고 당시에 보여준 신용과 신의가 이후 정신 없이 일감을 몰고 왔다고 회고하고 있다. 세종시, 과학비즈니스벨트, 동남권 신공항 등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大選) 약속을 놓고 말들이 많다. 특히 정치논리를 배제하고 경제논리로 볼 때 이런 약속은 번복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가 나와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경제의 모든 행위나 결과물은 신용의 토대 위에서 나올 정도로 신용, 즉 '크레디트(Credit)'는 경제논리의 핵심 가치이기 때문이다. 도서와 문화체육관광부를 담당하다 보니 가끔은 내게 위인전을 보내오는 경우도 있다. 역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사람들의 존경받을 만한 삶을 읽다 보면 자녀가 자연스럽게 그들을 본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부모가 자녀에게 가장 읽히고 싶어하는 책인 듯하다. 그런데 약속을 여기면서 위인이 됐다는 얘기는 내가 읽은 위인전에는 아직 없었다. 대부분 삶의 기본적인 원칙과 성실한 태도를 갖고 지속적으로 최선을 다하다가 시대적 상황과 인연을 통해 비약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뿐이었다. 성공에는 여러 정의가 있는 듯하다. 그 중 하나인 '성공이란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표현도 현 상황에서 우리가 한번 되새겨볼 만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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