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업들 연쇄부도 무엇이 문제인가/“돈은 있는데 돌지 않는다”

◎은행에 간 돈 종금·기업으로 이어지지 못해/신규대출 중단·한계기업엔 무차별 여신회수최근의 심상치않은 기업체 연쇄부도는 금융시스템 붕괴의 결과다. 시중에 돈이 모자라는 상황은 분명 아니다. 한국은행은 현재 환매체(RP)조작을 통해 6조원을 공급하고 있고 28일에도 2조2천억원을 풀었다. 이달들어 금융권이 보유중인 RP대상 국공채가 바닥나자 통화안정증권을 중도에 다시 사들이는 방법으로 수조원대의 자금을 방출했다. 중심통화지표인 MCT(M2총통화+CD양도성예금증서+금전신탁)증가율은 지난달말 13%수준에서 최근엔 약간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은의 자금공급규모나 통화지표만 봐서는 시중자금난의 이유를 알 수 없다. 총 통화공급량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은 금리에서도 나타난다. 회사채나 기업어음(CP) 유통수익률은 연 18%, 21%대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금융기관간 거래금리인 콜금리는 연 15%수준이다. 금융기관들이 갖고 있는 자금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금융기관끼리만 거래될 뿐 시중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문제는 금융시스템 붕괴와 그에 따른 자금흐름경색이라는 얘기다. 금융시스템 붕괴의 원인은 다양하고 그 결과도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외환위기로 촉발된 금융권의 외화자금난은 당장 환율급등을 불러왔고 금융기관들이 달러를 사기위해 자금시장으로 몰리다보니 혼란이 심화됐다. 늘 지적되는 문제지만 종금사들의 어려운 사정은 금융시스템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있다. 통화당국이 은행에 아무리 자금을 지원해도 돈이 가야할 목적지인 종금사나 기업으로 흘러들 수 없는 상황이다. 은행들은 한은으로부터 연 12%대의 금리로 자금을 지원받고있지만 『곧 쓰러질지 모를 종금사를 믿고 돈을 빌려줄 수 없다』며 마냥 버티고 있다. 통화당국이 공급한 돈이 은행까지만 흘러가고 은행에서 종금, 기업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금여력이 없는 종금사들은 기업어음(CP) 중개기능을 상실했다. 종금사들은 아무리 높은 금리를 제시해도 돈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이제 기업들에 빌려준 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시중금리는 IMF구제금융 신청을 계기로 요동치며 연 20%대로 치솟았다. 통화긴축을 우려한 삼성, 현대, LG 등 대기업은 발빠르게 자금확보에 나섰고 덕분에 회사채유통수익률이 연 18%대까지 올라섰다. 은행들은 이처럼 시중금리가 치솟자 『현재의 금리체계로는 대출을 할수록 역마진이 심해진다』며 신규대출을 중단하고 진성어음할인마저 기피하고있다. 특히 한계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무역금융마저 거부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이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종금사는 제몸 추스르기도 어려워 기업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채권시장은 거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 초우량 재벌 물량만 소량 거래되고 있다. 증시붕괴로 주식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은 엄두도 낼 수 없다. 한마디로 돈 나올 구멍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금융시스템이 정상이라면 재무구조가 견실한 기업들은 예외로 취급되어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신용이 아무리 좋고 담보가 많아도 자금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금융권의 자금지원없이 더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기업들은 무차별적인 여신회수까지 겹쳐 연쇄도산을 피할 길이 없다.<손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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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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