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슈퍼 엘니뇨 온다" 잇단 경고… 신흥국 금융불안 커지나

美·中·유럽 등 대다수 국가에 성장률 상승 긍정 요인이지만

印·필리핀 등 동남아 신흥국, 경제비중 높은 농업 큰 타격

애그플레이션 촉발 우려 높아

美 금리인상 속도 빨라질 땐 브라질 등으로 전이 가능성도


최근 '슈퍼 엘니뇨' 경고가 잇따르면서 글로벌 경제에 어떤 파장을 미칠 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엘니뇨는 일반 상식과는 다르게 미국·중국·유럽 등 대다수 국가의 성장률 회복에 긍정적인 요인이다. 기상이변으로 가뭄이 해갈되면서 오히려 농업 생산량이 늘어나는 데다 일부 지역에서는 허리케인 등 자연 재해가 줄어드는 탓이다.

문제는 동남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일부 취약 신흥국이다. 경제 비중이 높은 농업 부문을 강타하고 '애그플레이션'(식료품 가격 따른 물가상승)이 발생하면서 사회 혼란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엘니뇨의 여파로 이들 신흥국의 성장률이 둔화된 가운데 미국의 인플레이션 상승으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긴축 행보를 가속화할 경우 금융불안이 재발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엘니뇨는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0.5도 이상 올라가는 현상으로 동남아·호주·동부 아프리카에는 가뭄과 폭염을, 중남미·북미에는 폭우를 몰고 온다.

◇주요국에는 성장률 플러스 요인= 엘니뇨가 글로벌 경제를 재앙으로 빠뜨릴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일종의 호들갑에 가깝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90%를 차지하는 33개국을 대상으로 1980년대 이후 발생한 엘니뇨 9개가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4분기 뒤 미국과 중국, 유럽의 성장률이 각각 0.55%포인트, 0.56%포인트, 0.69%포인트 더 상승한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엘니뇨가 발생하면 건조 지대인 캘리포니아주의 강우량이 증가하면서 라임, 아몬드, 아보카도 수확량이 늘어나는 동시에 동부 지역의 허리케인 피해가 대폭 줄어든다. 중국 역시 북부 지역은 건조해지는 반면 남부에는 강우량이 증가하면서 전반적인 영향력이 '중립'이지만 교역 비중이 19%에 이르는 미 경제 회복의 수혜를 함께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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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시 여름철의 빈번한 태풍에 당장은 GDP의 0.1%가 깎였지만 주요국의 경제 개선에 힘입어 4분기 뒤에는 0.37%포인트 더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엘니뇨 피해국으로 알려진 남미의 브라질, 아르헨티나도 4분기 뒤 성장률이 각각 0.68%포인트, 1.08%포인트 증가했다. 브라질의 경우 엘니뇨가 발생하면 북부 지역은 가뭄에 커피, 설탕 등의 생산이 타격을 입지만 남동부 지역은 풍부한 강수량에 수확량이 늘게 된다. 칠레 역시 엘니뇨 발생 때 GDP의 0.19%포인트 줄었지만 4분기 뒤에는 0.7%포인트 더 늘었다. IMF는 "지역 내는 물론 미국·유럽 등의 성장 개선에 따른 스필오버(파급 효과)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동남아 신흥국이 위기의 뇌관= 반면 호주·뉴질랜드, 남아공, 페루 등은 엘니뇨의 부정적인 파급력이 더 크다. 특히 쌀, 밀, 면화, 커피, 고무, 팜유 등의 집산지인 동남아 신흥국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지역은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엘니뇨에 따른 농업 수확량 감소로 경제난이 가중된 바 있다. 인도의 경우 가뭄 여파로 2015회계연도 성장률이 당초 전망치인 7.9%에서 0.5%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보인 게 현지 신용평가사인 크리실의 전망이다. 과거 엘니뇨 발생 때 인도네시아와 인도의 성장률은 4분기 뒤 각각 1.01%포인트, 0.25%포인트 감소했다.

또 다른 우려 요인은 식료품 발 물가 상승이다. 금융 전문지인 배런스는 "아시아 지역 물가는 지난해 이후 유가폭락에 힘입어 낮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올 3·4분기부터는 기저 효과 때문에 급등할 수 있다"며 "인도·인도네시아·필리핀이 가장 큰 물가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엘니뇨가 성장둔화, 고용 감소, 빈부격차 심화 등을 불러오면서 이들 지역의 정정 불안이 심화할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전세계적인 애그플레이션에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경우 외국인 자금이 탈출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위협 요인이다. IMF에 따르면 엘니뇨 발생 후 3분기 뒤 미국의 물가는 0.14%포인트 더 상승했다. 또 '취약 5개국'으로 꼽히는 인도, 인도네시아, 남아공 등에서 금융불안 징후가 나타날 경우 브라질 등 다른 신흥국으로 전염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동남아 국가들이 기준금리 인하 행진을 중단하면서 글로벌 환율전쟁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인도의 경우 4월 산업생산이 5개월래 최저치로 주저앉았지만 추가 금리인하 여지가 제한적이라는 전망이 많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동남아 국가들이 식품 가격 급등에 대응해 기준 금리를 올리지는 않더라도 추가 인하는 포기할 수 있다"며 "필리핀, 대만 등 상대적으로 경기 회복세가 강한 국가들에서 긴축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엘니뇨가 심화하면 인도·인도네시아가 달러 표시로 거래되는 식료품과 원자재 수입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통화가치의 절상을 유도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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