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ㆍ고령화는 단순한 인구현상로만 간주할 수 없다. 저출산은 우리 현대사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급성장의 이면에 은폐되거나 간과돼왔던 각종 문제들이 서로 충돌하고 사회구조적 모순으로 표출되면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사회현상이다. 고령화도 단순히 평균수명이 늘어나 나타나기보다 과거와 현재의 성장을 이끌어오고 버팀목 역할을 해온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층으로 진입하면서 필연적으로 미래에 다가올 복합적 의미를 가진 사회현상이다.
21세기 들어 저출산ㆍ고령화 현상이 한국 사회에서 미래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이끌고 궁극적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출산ㆍ고령화 현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파괴력이 커지는 특성을 가진다. 이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은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돼 이명박 정부에서 계속되고 있다. 두 정부는 각자의 방식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비정규직도 일·가정 양립 지원해야
저출산 극복은 차기 정부에서 가장 우선해야 하는 과제다. 국민의 천부적인 권리로서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이 어려운 사회가 지속된다면 어떠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 존재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18대 대통령 후보자들의 공약들도 상당 부분 저출산ㆍ고령화와 연관돼 있다. 저출산은 일반적인 사회복지정책과 같이 한두 개 정책만 열심히 잘하면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사회 모든 영역에 걸쳐 종합적으로 접근하고 기본적인 사회문화적 토양을 배양해 정책들이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을 때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보육의 핵심 이슈는 국가가 과연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이다. 이는 시설ㆍ서비스 관점에서 보육의 공공성, 비용 관점에서 무상보육으로 구분된다. 이에 대해 저출산 정책이 시작된 이래 두 정부에 걸쳐 논쟁이 지속돼왔다. 물론 차기 정부도 자유스럽지 않을 주제로 보다 현실에 기반한 합리적ㆍ구체적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결혼은 취업과 주택을 전제로 이뤄지는 것이 현실이다. 청년층의 취업, 더 나가 고용안정에 대한 근본 대책을 우선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청년층의 고용안정과 주거지원을 지나치게 대졸자 중심으로 한정하고 고졸자 등을 염두에 두지 않는 정책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자녀 양육비에 대해 아주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개인적 선택으로 발생할 수도 있으나 근본적으로 사회구조에 기인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재원 부담이 따르겠지만 저출산 극복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국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도 양육비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해결책들이 나와야 한다.
선진국에서 일과 가정의 양립은 핵심적인 사회정책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가정을 희생하고라도 일만 중시해왔던 만큼 획기적인 개혁 없이는 쉽게 달성할 수 없는 영역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직장문화와 가족문화가 변화해야 하며 이는 남성과 기업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일과 가정의 양립은 모든 직업계층의 문제로 배제ㆍ차별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육아휴직제도만 보더라도 비정규직과 자영업자 등 광범위한 계층이 배제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대통령 후보자들도 일ㆍ가정 양립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반드시 약속해야 할 것이다.
생산적 논쟁 거쳐 정책수준 높이길
정부는 최근 보육정책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사회 각계각층에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서구 국가들은 수십년간 여성의 모성권 대 노동권, 탈상품화 대 탈가족화에 대한 논쟁과 정치적 합의를 거쳐 현재의 보육제도를 구축했다. 보육은 자녀들을 시설에서 보호하는 단순한 사회복지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보육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매우 필요한 것으로 좀 더 일찍 시작했어야 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많은 정책들이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는 아직 논쟁이 본격적으로 점화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8대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은 국민에 대한 약속으로 많은 논쟁을 불러올 것이다. 논쟁은 정치적 논리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공약들은 보다 과학적인 근거와 이성적인 판단에 기반할 때 보다 실천적이고 생산적일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는 만성적인 저출산 덫에서 빠져나와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