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계의 사설] 슬로바키아 총선과 '개혁 피로증'

슬로바키아 총선에서 개혁 추진 세력인 집권 여당이 패배했다. 지난 8년간 과감하게 외자 유치, 규제 완화 등 시장 친화적 개혁을 주도했던 미쿨라시 주린다 총리는 좌파 스메르당에 정권을 내주게 됐다. 하지만 이는 시장 개혁주의자들에게 유익한 교훈이다. 이번 ‘슬로바키아 패배’는 시장 지향적 개혁이 대중들에게 얼마나 인기 없는 정책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미쿨라시 주린다의 개혁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세계적으로 고립 상태에 있었던 슬로바키아를 국제 무대로 이끌어냈다.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도 가입했다. 슬로바키아는 특히 친시장적 정책으로 동유럽에서 가장 기업 환경이 좋은 나라로 꼽혀왔다. 지난 2005년 경제성장률(GDP)은 EU 회원국 중 가장 높은 6.1%였다. 이 같은 성과에도 슬로바키아 국민들은 만족하지 못했다. 이른바 ‘개혁피로증’(tired of reform)이다. 그의 개혁 드라이브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은 좌파 포퓰리스트 로베르트 피코를 선택했다. 이것이 슬로바키아 총선 결과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다. 그러나 슬로바키아의 개혁은 중단돼서는 안된다. 슬로바키아의 시장 자유주의 지지자들의 ‘이른 절망’은 더더욱 곤란하다. 당선자 피코는 선거 공략으로 ‘비인기 개혁’들의 전면 재검토를 선언했다. 하지만 주린다가 남긴 유산은 지속될 것이다. 역사는 주린다의 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코 역시 시장 자유주의라는 시대적 조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아마도 그는 주린다와 비슷한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린다가 그랬던 것처럼 외국인 투자 유치와 시장 친화적 기업 환경 조성을 위해 애쓸 것이다. 오는 2009년 유로존 가입을 위해 고군분투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만약 피코가 주린다의 유산을 큰 변화 없이 따른다면 슬로바키아는 ‘피코 이후’에도 고속 성장 국가로 남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피코가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냉혹한 국제 경제적 현실이다. 전세계는 지금 글로벌 경쟁과 지구적 시장 통합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오늘의 성공이 내일의 성공까지 보장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표적 예가 이웃 나라 헝가리다. 한때 헝가리는 성공적 시장 개혁으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그들은 현재까지다 옛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헝가리 정부가 절체절명의 시기에 개혁에서 뒤쳐진 탓이다. 슬로바키아 역시 갈림길에 섰다. 개혁피로증을 떨치고 새로운 시장 개혁에 드라이브를 거느냐 분배 중심의 반시장적 기업 환경으로 돌아서느냐. 이는 ‘피코’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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