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제2 개성공단은 없다

"담배 끊었는데… 한 대 있으면 줘보시오. 허허."

지난 26일 저녁 서울 무교동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실 앞 흡연구역. 우리 정부의 잔류 근로자 전원 철수 결정 발표 직후 한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가 기자에게 그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워야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애써 태연한 척 웃음을 띤 표정이었지만 씁쓸함이 짙게 배어나왔다.

기자들의 출입을 통제한 채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회의를 이어가던 다른 대표들도 하나둘씩 나와 줄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다 끝난 것과 마찬가지라는 듯 "완전 철수는 이제 전쟁을 하겠다는 의미 아니냐"며 "미국이 무기를 팔기 위해 전쟁을 조장하는 것 같다"고 울분을 토해내기도 했다.


29일 마지막 개성공단 잔류인원이 모두 귀경하면서 금강산관광이 시작된 1998년 이후 15년 만에 북한 체류 인원은 처음으로 '0'이 됐다. 아직 폐쇄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거의 초상집 분위기다. 정치 논리 때문에 기업 활동이 인질로 붙잡히는 것은 21세기에 아마 개성 땅에서만 가능한 일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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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는 이날 ▦입주기업 피해 최소화 ▦가능한 범위 내 최대 지원 ▦수립한 방안의 신속 시행 등 3원칙을 제시하며 공장가동ㆍ영업재개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조업중단 20일이 넘은 상태에서 이미 늦기도 했지만 이번 사태는 기업 피해를 최대한 보상해준다고 끝날 일도 아니다.

기업 활동의 생명은 신용이다. 우여곡절 끝에 영업재개가 된다 해도 거래처들로부터의 신뢰를 잃고 남북 정부에 대한 믿음도 사라진 상황에서 이전처럼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펼쳐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북한 핵실험 직후부터 통일부와 외교부를 수도 없이 드나들 때마다 "잘 해결될 것"이라는 답변만 듣고 설마설마해왔던 입주기업들이다.

제2ㆍ제3의 개성공단에 대한 꿈도 완전히 끝났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날 "이제 세계 어느 누가 북한에 투자를 하려고 하겠느냐"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처럼 더 이상 북한 지역에 들어가려는 국내외 기업이 추가로 나타날지 의문이다.

북한에서는 개성공단 사태의 책임을 우리에게 떠넘기면서도 완전 폐쇄 언급을 아끼며 여전히 공단 폐쇄 카드를 최후의 수단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다. 어리석고 답답한 일이다. 개성공단을 정치적 수단으로 꺼내든 것 자체가 북한의 패착이다.

글로벌 사회에서 기업 활동에 신용불량이라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줄담배를 피우던 입주기업들 대표들의 속이 지금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북한에서는 아는가 모르겠다. 태어나서 양말 한 짝 팔아본 적 없을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공업단지란 그저 내키는 대로 문을 닫았다 열기만 하면 되는 곳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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