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통증에만 매달리지 마라
(김형기 부국장대우 산업부장) kkim@sed.co.kr
피부에 부스럼이 돋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부과로 달려간다.
오염된 환경에 노출돼 피부가 약해지면서 발생한 것이라면 피부트러블을 없애는 처방만으로 충분히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발병 원인이 피부가 아니라 만성피로나 간 기능 약화 때문이라면 아무리 좋은 피부약을 발라도 증세를 경감시킬뿐 병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내기는 어렵다.(기자의 사견이 아니라 의사의 견해이므로 토 달지 마시기를)
우리 경제가 연초부터 물가 폭등으로 비상이다.
새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물가잡기’에 몰입해야 하는 형국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라면 값을 거론해야 할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다.
하지만 바쁠수록 천천히 가라. 냉정한 머리로 폭등 원인을 따져야 해법도 발견되기 마련이다.
지금의 물가 상승은 가깝게는 글로벌 원자재 확보 경쟁과 바이오 에너지 부상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좀더 멀리부터 따지면 지난 2003년 이후 미국의 주도로 줄곧 전개된 전세계 통화량 증발의 후유증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ㆍ영국ㆍ호주ㆍ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지난 수년간 많은 나라들이 경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금리를 대폭 인하하면서 화폐유동성을 늘렸다. 덕분에 3~4년간 사람들의 씀씀이가 커지면서 경제가 활기를 띠었지만 넘치는 돈이 제때 흡수되지 못해 결과적으로 ‘돈의 가치’만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발생시켰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원유를 시작으로 각종 원자재들 ‘화폐대비 가치’가 상승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당시 배럴당 40~50달러 수준이던 국제 원유가격은 지금 100달러선을 오르내리고 있으며 철광석이나 석탄ㆍ비철금속 등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고유가로 새롭게 바이오 에너지시장이 커졌고 이는 전세계 곡물가격을 들어올려 급기야 라면사재기로까지 이어졌다.
지난해부터 금리조정으로 넘치는 돈을 흡수하려 애썼지만 한번 풀린 돈을 거둬들이기가 만만찮아 적정 수위로 낮추지 못해 경제활동 각 영역에 통증을 유발시켰다.
기업실적은 악화됐으며 가계 수입도 감소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역시 이 연장 선상의 결과다.
악순환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파괴력이 커진다. 최근 모습은 내리막길에 ‘가속 페달’을 밟는 듯 위태롭다.
‘돈의 가치 하락’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출발점이었던 원자재시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신일본제철과 포스코가 최근 브라질의 광산업체인 발레와 맺은 철광석 공급가격 인상폭은 무려 65%에 달한다. 풍문에는 이 소식을 들은 호주 광산업체가 “(호주산 철광석은) 해상운임 부담이 브라질보다 적게 들어가니 공급가격을 100% 이상 올려달라”고 요구한다고 한다.
지금 진행되는 가격 상승 압력은 직전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파고가 높다. 기업경영과 가계 수지로 이어지는 다음 단계 역시 직전보다 훨씬 심각해질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현장을 챙겨라’는 첫 지시를 내렸다. ‘물가만은 잡겠다’는 의지도 강하게 피력했다. 현장을 단속해 물가가 잡히면 다행이지만 돌아가는 사정은 그리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를 대하면 고통을 완화시키는 것이 일단 급하다. 하지만 ‘1류 의사’라면 병인(病因)을 정확히 진단해 이를 치유하거나 병세를 최소화하는 근본치료를 처방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
격리를 하든 수술을 하든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은 새 경제팀이 고민할 문제지만 자칫 환자가 지르는 비명에 정신 못 차리고 통증에만 매달린다면 ‘3류 의사’라는 손가락질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물가 앙등의 고통은 ‘피부’에 있지만 고통의 원인은 ‘간 손상’이다. 까다로운 문제를 풀기 위해 현명한 위기대응 능력이 그래서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