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물가 관치로 잡히나] <2> 이익구조 훼손에 기업존립 흔들

정부 압력에 원가상승분 반영 못해 이익 급감… "투자 스톱"<br>정유사 1조~2조대 이익<br>가격 인하에 쏟아부어도 10원인하 효과밖에 없어<br>"이젠 더이상 못버티겠다" 일부 업체들 인상 강행도




기업을 향한 정부의 가격통제 압박수위가 연일 높아져가던 지난 14일 업계 3위인 한국철강이 철근 가격을 톤당 5만원씩 올렸다. 이를 신호탄으로 제강사들이 줄줄이 가격을 인상한 것도 전해졌다. 정부가 가격인상을 자제해달라고 눈을 부라렸지만 제강사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생존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철근 가격을 올린 한국철강은 원료 가격 급등으로 지난해 창사 이후 30년 만에 2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여기서 더 밀리면 존립기반이 흔들린다는 절박감이 정부의 날 선 압력을 뿌리친 것이다. 정부의 직접적인 가격통제가 기업의 이익구조를 뒤흔들어 시장경제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 강제적 이익축소 압력에 직면한 정유사와 대형 철강사, 통신사들은 손실감수는 물론 기업활동이 크게 위축될 상황에 처해 있다. ◇기업 수익성ㆍ경쟁력 악화 불가피=전문가들은 정부의 가격통제가 기업실적을 악화시켜 이익구조를 훼손할 것이라며 크게 우려하고 있다. 원가상승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기업실적이 악화되면 투자 등 성장잠재력이 훼손되고 기업 신인도도 떨어져 자금조달에 먹구름이 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조성봉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기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면 투자는 물론 신제품 개발도 못하고 생산성ㆍ경쟁력 저하와 함께 일자리 창출도 힘들어진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물가인상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정유 4사의 연간 이익규모는 1조~2조원가량. 이를 모두 기름값 인하에 쏟아 부을 경우 인하폭은 리터당 10원가량 된다는 게 정유업계 측의 주장이다. 모든 이익을 가격인하에 쓴다면 정유사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거꾸로 국제 석유제품 값이 하락세를 나타내 정유사들이 적자로 돌아선다면 부실화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03년 현대정유가 적자를 견디지 못해 아랍에미리트(UAE)의 투자회사인 IPIC에 매각됐다가 지난해 현대중공업이 되사온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며 "유전을 가지지 못한 한국 정유사들은 해외 메이저 석유회사에 비해 외부 변수에 취약하다"고 말했다. ◇이익 없으면 투자도 없어=기업들의 실적악화는 투자에 악영향을 미쳐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지난해 수십조원의 매출을 올린 정유사들의 정유사업 영업이익률은 1~3% 수준. 그나마 지난해 정유사들의 영업이익이 개선된 것은 부가가치가 높은 고도화 설비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절반 이상을 수출한 결과다. GS칼텍스는 2004년 이후 고도화 설비에만 5조원을 투자해왔다. 현대오일뱅크는 올해 초 2조6,000억원을 들인 두 번째 고도화 설비를 완공했다. 정유업체의 한 관계자는 "2006년 이후 당기순이익보다 많은 금액을 고도화 설비 등에 투자하고 있다"면서 "정유사들이 지난해 정유사업에서 1~3%의 영업이익률이라도 기록한 것은 고도화 설비로 생산한 물량을 수출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정유사들의 이익구조가 훼손되면 지속성장을 좌우할 해외자원 개발도 타격을 받는다. 자원개발 사업은 투자비 회수에 개발광구의 경우 최소 5년 이상, 탐사광구는 10년 이상 걸릴 정도로 긴 호흡의 장기투자가 필요한 분야다. 철강업계 역시 꾸준한 설비투자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만 살 수 있다. 또 중국의 저가 철강제품 공세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고부가제품을 통해 차별화를 꾀해야 한다. 실제 현대제철은 올 상반기 착공 예정인 3기 고로를 위해 총 3조원의 투자를 단행한다. 동국제강 역시 브라질 고로 제철소 착공에 최대 4조원의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포스코는 인도에서 추진 중인 3개의 일관제철소 프로젝트와 광산 인수 등에 천문학적 자금을 투자한다. 포스코의 지난 한해 영업이익은 5조여원, 순이익은 4조여원이다. 그러나 투자금액은 순이익의 두 배가 넘는 9조4,000억원을 집행했다. ◇기업신인도ㆍ주주가치 하락 우려=기업실적이 나빠지면 신용평가등급이 떨어져 투자에 필요한 직접금융 비용이 올라가는 것도 문제다. 신용도가 하락하면 원자재 수급비용도 올라간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실적이 나빠지면 신용등급 강등으로 이어져 결국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에서도 필요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고 밝혔다. 물가인상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통신사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최근 무디스는 SK텔레콤에 대해 "최근의 재무구조 개선 노력으로 과거 부정적(A2, Negative)에서 안정적(A2, Stable)으로 상향했으나 추후 매출상승 둔화 및 마진 하락이 지속될 경우 하향 조정하겠다"고 경고했다. SK텔레콤뿐 아니라 정부의 강제적 이익축소 요구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면 개별기업의 신용등급 하락→대외신인도 하락→차입ㆍ원자재 조달비용 증가→투자축소와 기술경쟁력ㆍ수익성 악화의 과정을 거쳐 결국 국가경제와 소비자에게 악영향을 주게 된다. 주주가치 하락도 부작용 가운데 하나다. 이명박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이 있은 1월13일 정유사들의 주가는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비시장적 요인 때문에 주가하락을 경험한 주주들은 인터넷 게시판에 정부를 성토하는 글을 잇따라 올리며 관치를 비판했다. 물가 관치가 지속된다면 해외 투자가들의 이탈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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