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적응력/유재용·소설가(로터리)

20여년 전 아홉 가구가 함께 사는 집에서 세들어 산 적이 있었다. 그 집에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이 둘밖에 없었다. 점잖게 말해서 화장실이지 한번에 한사람씩 들어갈 수 있는 한칸짜리 변소가 둘이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수세식 장치는 생각할 수도 없었고 대소변을 함께 처리해야 하는, 심지어 천장에 전등도 가설되지 않은 곳이었다.세들어 사는 아홉 가구의 식구들은 꽤 많아서 변소를 차지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아침에는 변소를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 당시 나의 가장 간절한 소원 가운데 하나가 내 가족들이 전용으로 쓸 수 있는 변소였다. 수세식은 언감생심 바라지도 못했다. 요즘 집 가진 사람들이 세를 놓으려면 방 하나에도 주방과 목욕 또는 샤워를 할 수 있는 수세식 화장실을 갖추어야 한다고 한다. 세들어 사는 사람은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할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런 거부감 없이 「뒷간」을 사용하던 우리가 어느새 수세식 화장실 아니면 거부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연전에 도시의 어느 유치원에서 자연학습을 시키려고 원아들을 데리고 산골로 갔다. 3박4일 예정이었다. 한데 그 일정을 채울 수가 없었다. 원아들이 산골의 재래식 뒷간에서 용변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한달 생활비 삼백만원을 쓰던 회사 중역의 가정이 중역이 회사를 그만두는 바람에 생활비를 백오십만원으로 줄이려고 했더니 도저히 못 살 것 같더라고 했다. 아궁이에 장작불 때던 일까지 끌어낼 것은 없더라도, 연탄불 때던 일을 잊어버린 사람은 많다. 그들은 이제 기름보일러·가스보일러를 치우고 연탄아궁이를 다시 사용하라고 한다면 기절을 할 것이다. 우리는 편리한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서 모르는 사이에 적응력을 잃어가고 있다. 살아가는 길목길목에 숨어 앉은 장애물을 치우고 넘고 헤치는 데 꼭 필요한 우리 몸과 정신의 어느 부분이 퇴화해가고 있고, 이미 퇴화해버린 것은 아닐까. 탄탄할 줄 알았던 우리 경제와 근면 검소정신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각자의 적응력을 지체없이 재정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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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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