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국익과 거리 먼 '韓·美FTA'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밀어붙이면서 경제 전체에 이득이 되니 일부가 큰 손해를 보더라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적절한 보상대책 없이 ‘국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발상도 문제이지만 비경제적 요소를 무시하고 국익을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미 FTA로 인해 피해를 입을 영화산업의 경우 문화 다양성의 문제, 농업의 경우 국토 균형발전 및 환경 문제 등 비경제적인 문제들이 걸려 있다. 그러나 정부 주장의 더 큰 문제는 순수하게 경제적 관점에서만 봐도 한미 FTA가 우리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미 FTA 지지자들은 FTA가 세계적 추세인 만큼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FTA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한다. 남들이 하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대세론’ 자체도 문제이지만 FTA가 ‘대세’가 아니라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지금까지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는 15개국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호주ㆍ캐나다ㆍ이스라엘ㆍ싱가포르를 제외하면 모두 중동ㆍ중남미의 가난한 나라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FTA를 맺지 않으면 마치 우리가 경제적으로 고립되기나 할 것같이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이에 더해 FTA 지지자들은 지금 우리나라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며 FTA를 맺으면 잃어버린 수출시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별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첫째, 미국의 공산품 관세는 평균 2% 수준으로 매우 낮다. 자동차ㆍ휴대전화 등 가격경쟁보다 품질경쟁이 더 중요한 고급품의 경우 이 정도 관세 철폐를 통한 가격 인하로 수출이 얼마나 늘어날지 의문이다. 섬유 등 비교적 관세가 높고 가격경쟁이 중요한 품목의 경우 수출 증대 효과가 꽤 있겠지만, 이들은 노동집약적 산업이어서 우리 수출과 경제의 미래를 짊어지지 못한다. 둘째, FTA는 미국 수출시장 점유율 하락이라는 ‘병’에 대한 ‘진통제’에 불과하다. 우리 제품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경쟁국 제품에 비해 가격 대비 질이 낮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병을 치료하려면 기술력 증대, 디자인 개선 등 병의 근원을 공격해야 한다. 설사 FTA가 단기적으로 시장점유율을 상승시킨다고 하더라도 제품의 상대적인 질이 개선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는 다시 수출시장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FTA가 진통제밖에 안된다는 것은 미국 자동차 업계의 몰락에서도 잘 드러난다.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지난 95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되면서 조립공장을 멕시코로 대거 이전했다. 임금이 싼 멕시코에서 조립해 가격을 낮추면 수입차와의 경쟁에서 유리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진통제 효과도 잠깐, 제품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투자를 게을리했던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크라이슬러는 98년 독일의 벤츠사에 합병당했고, 제너럴모터스는 파산설이 돌고 있으며, 포드도 경영이 어려워 대규모 감원을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의 근시안이 또 드러나는 부분은 한미 FTA를 체결하기 위해 우리의 미래 전략산업이요 다른 산업에 파급효과가 큰 영화산업을 희생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한국 영화산업이 국내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경쟁력이 생겼지만, 미국 영화가 세계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시장에서도 성공하려면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스크린쿼터)를 통해 국내시장의 이윤이 보장돼야 한다. 지금은 미국의 보잉사와 쌍벽을 이루는 항공기 업체가 된 유럽의 에어버스가 초창기에 미국 회사들의 독과점적 지위를 극복하고 수출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엄청난 정부 보조금을 받아야 했던 것도 같은 원리이다. 영화산업은 다른 산업으로의 파급효과가 큰 산업이다. 특히 우리 수출품이 고급화되면서 제품의 이미지가 점점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우리 영화산업이 성공해 ‘한국은 멋있는 나라’라는 인상을 심어준다면 전세계적으로 우리 제조업 수출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효과를 통한 세계시장으로의 수출 증대 효과가 미국시장에서 (관세 인하를 통해) 가격을 2~3% 깎아서 얻는 효과보다 훨씬 클 수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국익을 증진하려면 좀 더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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