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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칼럼] 白凡의 손자

[임종건 칼럼] 白凡의 손자 김진 전 주공사장의 수뢰혐의 구속은 많은 사람들에게 착잡한 감회를 불러 일으켰다.그 중에서도 가장 착잡했던 것이 영장발부를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문광섭판사였던 것 같다. 문판사는 구속영장 발부 뒤 "백범 김구선생의 장손인 피의자가 비리에 연루돼 명예손상에 따른 극도의 심리적 불안감을 겪고 있어 구금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살방지 위해 구속영장 발부 한마디로 김씨를 풀어 줄 경우 자살과 같은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까 봐 구속했다는 얘기다.범죄혐의자의 자살은 영원한 증거인멸이고 영원한 도주라는 점에서 이를 방지하는 것도 범죄응징 절차의 일부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문판사의 발언은 순수하게 인명존중 차원에서의 자살방지를 더 염두에 둔 말로 들리며 그런 목적의 구속영장 발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김씨의 구속은 명예를 지키는 것의 어려움을 새삼 일깨운다. 김씨의 할아버지인 백범은 길가는 사람에게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아마도 십중팔구가 꼽을 애국애족정신의 사표다. 애국애족정신은 국민 모두에게 계승될 때 최상의 가치를 지닌다. 애국심이 유전되는 것은 아니지만 후천적인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은 역시 후손들일 것이다. 후손들에게 조상의 광채는 영광이자 부담이 된다. 백범이 국민들의 마음에서 차지하고 있는 너무나 큰 자리로 인해 김씨의 구속은 본인은 물론 판사와 검사 그리고 온 국민을 참담케 했다. 단 하나만이라도 명예를 온전하게 지켜가는 애국자 가문을 보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오욕으로 점철된 근대사에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애국심의 변절과 타락을 보았다. 요즘 논의되고 있는 친일청산의 문제만해도 그런 오욕의 역사를 다시 들춰내자는 것이다. 일제에 부역한 사람은 이완용처럼 처음부터 능동적으로 부역한 케이스가 있을 것이고, 중도 또는 말년에 친일로 변절한 사람으로 대별할 수 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일제청산은 대부분 후자와 관련된 것이라고 하겠다. 이 같은 굴절은 일제의 강점기간이 36년이라는 비교적 긴 기간이었다는 데서 비롯된다. 나치 부역처럼 짧은 기간이었다면 애국자가 부역자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므로 일제청산도 그만큼 쉬웠을 것이다. 초지를 일관한 독립운동가 가운데는 백범처럼 해외에서 활동한 분이 많은 것도 강점기간과 연관이 있다. 일제시대 변절의 역사보다 더 참담한 것이 해방이후 역사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성한 몸으로 권좌를 물러난 사람이 없다시피 한 게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범의 존재는 더욱 존귀하다. 비록 후손 한사람의 비행이지만 그것이 백범의 이미지, 나아가 국민의 정서와 후세교육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염려하게 되는 이유다. 국민정서에 부정적 영향 우려 강퍅한 세태가 만들어내는 이 같은 불상사는 국민사기관리 차원에서 예방돼야 한다. 감춰진 일제부역 기록을 들춰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추앙받는 애국지사의 이름이 후대에 와서 더럽혀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라고 본다. 변절의 역사는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 몇 분이 말년에 변절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민족사에 욕되는 일이다. 이 사건에 내포된 또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후손 관리에도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김씨를 주택공사사장에 앉히면서 비리사건이 많은 주택공사에 백범의 후손답게 청신한 기풍을 진작시키라는 기대가 있었을지도 모르나 그것이 결국 정부와 개인,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불행을 초래했다. 유혹이 많은 자리는 명예를 지키는데 적절치 않다. /논설실장 imjk@sed.co.kr 입력시간 : 2004-08-0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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