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오래오래 사세요…

오래오래 사세요…[장벽을넘어서] ■이별앞둔 이산가족들 "손자들이 보고싶어" "같이 살자고 해봐요" 만나자 마자 헤어짐에 애틋한 기원 쏟아내 통신·서신교환 허용기대 다음엔 성묘도 할수있게… 『오마니, 오래오래 사세요.』 『그래 너도 건강하고…. 또 만나겠지.』 이산상봉 사흘째인 17일 오후1시45분 서울 워커힐호텔 선플라워 룸. 북에서 내려온 신재순(89) 할머니와 50년 만에 만난 아들 조주경(68)씨는 두 손을 놓지 못한 채 언제쯤 다시볼 수 있을 지 알 수 없는 이별에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슬퍼서 눈물이 나고 기뻐서 눈물이 나고 그런다』며 말을 잇지 못한 신 할머니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후손을 보고 싶은 듯 『위가 딸이지』라며 손자들에 대해 물었다. 신 할머니는 『손자들이 보고 싶다. 그렇지만 법대로 해야지…』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50년간 쌓인 가슴의 응어리가 채 풀리기도 전에 이별의 날을 맞는 이산가족들은 모두 서로를 부여안고 애틋한 기원들만을 쏟아 놓았다. 『고교시절 밤새워 책상 앞에 앉은 아들이 안스러운지 툇마루에 앉아 같이 잠못이루시던 어머니, 이제 또다시 기약 없는 이별이 눈앞입니다. 부디 통일의 그날 다시 한번 안아주십시오.』 북한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조진용(69)씨는 어쩌면 마지막 상봉이 될지도 모르는 어머니 정선화(94)씨의 손을 잡고 애끓는 사모의 심정을 자작시에 담아 읊어 내렸다. 50년간 꿈에 그리던 어머니를 천신만고 끝에 만났지만 다시 헤어지는 아픔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아들의 애절한 말이 들리는지 안들리는지 어머니는 『계속 잘 살아라.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나운서 이지연(52)씨의 오빠인 북한 「공훈배우」 리래성(68)씨는 『북에서는 추운 겨울에 여름이나 봄 장면을 찍기가 어렵다. 남북영화교류 차원에서 2~3년 내에 다시 남한에 와서 영화를 찍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고 화가 정창모(68)씨는 『서울의 경치는 역시 한강이 제일인 것같다』면서 『다음에 다시 오면 한강의 저녁노을을 주제로 해서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한의 최고 화학자 조주경(68)씨는 워커힐호텔 지하 오찬장에서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어머니께서 같이 살자고 그래요…』라며 말을 흐리면서 『그래도 통신과 서신은 나눌 수가 있겠죠』라며 후속조치의 진전을 기대했다. 서울에 와서 조촐한 칠순잔칫상을 받은 리록원(70)씨는 동생들에게 『적십자회담을 통해 자주 만나자』면서 『그러자면 건강해라. 건강해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건강을 당부했다. 남측 이종덕(64)씨는 『다음에는 부모님 묘소에 성묘라도 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오철수기자CSOH@SED.CO.KR 입력시간 2000/08/17 17:58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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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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