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동결·경영유지 2중포석/채권단에 사후통보 협조요청/개시결정돼도 김 회장 퇴진 계속 쟁점화29일 부도유예협약의 종료를 앞둔 상태에서 기아의 선택은 크게 세가지였다. 자구를 통한 회생, 법정관리, 화의였다. 기아는 화의를 택했다. 기아가 화의를 신청한 것은 법정관리나 부도와 같은 극단적 사태의 발생을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뜻이다. 화의가 받아들여지면 제3금융권을 포함해 채권단의 모든 채무가 동결된다.
현 경영체제의 유지도 큰 목적으로 볼 수 있다. 화의는 법원이 결정한다. 결정에 앞서 채권단의 의사를 확인하겠지만 지금 상태에서 채권단이 ▲김선홍 회장의 퇴진 ▲노조의 동의서를 화의수용의 전제로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기아의 판단이다. 즉 현재로선 채권단이 기아의 요구를 거부하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고 보고 있는 것. 이와관련, 이종대기아정보시스템사장은 『채권단과 협의된 것은 없으나 경영진에는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번 결정은 주력사인 기아자동차를 살린다는 뜻이다. 함께 화의를 신청한 아시아자동차, 기아특수강, 인터트레이드 등은 기아와 지급보증 등으로 얽혀 있어 이를 방치할 경우 기아자동차에도 심각한 타격이 발생할 수 있다.
한편 채권단 입장에서는 채권동결 기간이 5∼7년으로 법정관리에 비해 훨씬 짧고, 담보권을 행사할 수 있어 동의해줄 것으로 기아는 판단하고 있다.
현재 기아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최소한 29일 이전에 화의개시 결정이 내려지는 것』이다. 만약 29일 이전에 재산보전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다면 기아는 부도가 불가피하다. 또 채권단이 김회장과 노조동의서를 계속 요구할 경우 기아의 경영정상화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기아는 노조동의서는 실현가능성이 있으나 김회장의 거취는 불변이란 입장. 따라서 이 경우 채권단은 화의신청을 받아들인다 해도 자금지원을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기아는 지금처럼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이때 채무동결에도 불구하고 기아는 다수 계열사의 부도가 불가피해 진다.
한편 채권금융단측은 기아측의 화의신청이 부도유예협약 만료(29일)이후 닥칠 부도사태를 막기 위해 당분간 시간을 벌기위한 조치로 보고 있다. 기아측이 화의 개시만 되면 김선홍회장 등 현 임원의 경영권이 유지되고 리스 등 3금융권의 상환유예 동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복안이라는 게 채권단의 분석이다.
그러나 개별 채권 금융기관별로 담보 유무에 따라 입장차이가 현저히 다른데다 화의 개시의 경우에도 김회장의 퇴진문제가 화의 동의 여부를 둘러싸고 채권단의 최대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기아가 화의신청을 하기전에 정부, 채권단 등과 어느 정도 협의를 했느냐가 기아향방의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기아가 화의신청을 하기로 최종결정을 내린 것이 지난 21일 밤이고 보면 사전협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이를 확인하고 있다.
이사장은 이와관련, 『화의신청을 전후하여 정부당국과 채권단에 그 배경과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사후설명인 셈. 하지만 이사장은 『기아자동차를 살리기로 방침을 정한 정부와 채권단이 어렵지 않게 동의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혀 절차의 중요성에 그리 무게를 싣지 않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박원배·이형주 기자>
◎각계반응/채권단입장 제각각속 대체로 수용/재경원,마음에 안들지만 대응책없어 고심
○“3자인수 물건너가”
○…기아그룹이 기아자동차 등 4개 계열사들을 법원에 화의신청한데 대해 채권금융기관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엇갈린 반응을 보였으나 대체로 일단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제일은행을 주축으로 한 채권은행들은 기존에 검토해오던 채권상환유예방식으로는 할부금융,파이낸스,리스사 등 소위 제3금융권의 대출금 회수를 막을 길이 없다는 점에서 화의가 차선책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입장을 보였다.
윤규신 제일은행 전무는 『기아가 제3금융권으로부터 1백% 채권유예 동의서를 받을 자신이 없어 화의신청을 낸 것으로 안다』며 『기아자동차를 파산시킬 수는 없으므로 가급적 화의신청에 동의해주는 방향으로 검토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다른 채권은행들도 기아의 화의신청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으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의 결정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어서 제일은행이 화의신청에 동의할 경우 채권은행들은 그 결정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반면 종금사들은 화의가 부도후 법정관리보다는 나은 수순이긴 하나 가장 바람직한 해법인 제3자인수가 물건너 간데 대해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종금사 관계자는 『화의조건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종금사 여신에 대한 금리조건이 조달금리수준 이상으로 높게 적용되지 않는 한 결국 종금사들은 경영에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스사를 중심으로 한 제3금융권에서도 화의신청에 대해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결국 채권은행단의 결정에 따를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현실론을 내세웠다. 일부 금융기관들은 법원의 재산보전처분이 내려질 것으로 보이는 오는 29일 이전에 여신을 서둘러 회수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어 화의신청이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김상석 기자>
○입장표명 상황아니다
○…기아의 화의신청에 대해 재경원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마땅한 대처방안이 없어 고심. 화의신청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마땅한 해법없이 입장을 표명할 경우 국민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선뜻 결정하기는 힘들다는 것.
재경원의 한 고위당국자는 『기아의 화의신청은 당초 정부와 채권단이 생각했던 사태해결 방향과는 다르다』며 『모두 현재로서는 입장을 표명할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사전협의는 전혀없었다』면서 『화의의 화자는 채권금융단과 기아의 관계가 화목하다는 뜻인데 그런것으로 보이냐』고 반문, 기아측이 확실한 화의조건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또다른 당국자는 『화의는 채권금융단으로부터 일일이 담보권 행사유예, 금리나 상환유예 기간 등 화의조건에 대해 동의받아야 하기 때문에 채권단의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들에 의해 이용되는 것』이라며 『기아와 같은 대기업의 경우는 현실적으로 모든 채권기관의 동의를 받기가 어려워 실행여부가 미지수』라고 설명했다.<최창환 기자>
○전경련 공식논평자제
○…재계는 기아그룹이 법원에 화의를 신청한데 대해 당혹해 하면서도 기아자동차 인수 등을 둘러싸고 민감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그룹별로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경련 등 경제단체와 삼성·현대·대우 등 주요그룹관계자들은 기아의 화의신청이 칼자루를 쥔 정부와 채권단에 수용될 지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공식논평은 자제하고 있다. 대우관계자는 『기아에 대한 부도유예협약적용이 만료되는 오는 29일 채권금융기관의 해법이 나와봐야 기아의 화의가 수용될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존 자동차업체들은 그동안 추진해 온 분할인수방안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그룹은 기아보고서파문이후 여론 등을 고려해 기아자동차의 인수문제를 수면아래로 잠복시켰지만 기아의 화의신청에 대해 김회장이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시간벌기를 통해 제3자인수를 저지하려는 묘수라며 평가하고 있다. 특히 화의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기아자동차 등의 제3자매각이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면 현대 대우 등은 채권단의 기아해법을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기아특수강의 공동경영은 계속 추진하기로 했다.<이의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