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시론] 빅딜이 남긴 과제

정갑영 (연세대 경제학)오늘로서 대통령과 5대그룹 회장들이 재벌개혁에 합의한지 꼭 1년이 지났다. 과연 개혁은 어디까지 왔는가. 가장 큰 진전은 경영투명성과 지배주주의 책임강화부문이었던 것 같다. 재무구조의 개선과 상호지급보증의 해소도 경직적인 목표가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지만 그런대로 진행이 되고 있다. 진통을 거듭하던 「빅딜」도 표면상으로는 정리된 것 같다. 정권은 유한하고 재벌은 영원하다고 하지만, 돈줄을 쥐고 있는 금융당국의 큰 손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빅딜의 실질적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가 더 문제이다. 풀어나가야 할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닐 뿐 아니라, 목표 자체가 서로 상충되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통합에 이르는 과정도 원만할 것 같지는 않다. 연애 결혼한 사람은 잘되든 못되든 자기 책임이지만, 자의반 타의반 소개로 만난 사람들은 틈만 있으면 중매쟁이를 원망하지 않는가. 통합과정에서 노사가 모두 정부를 원망할 게 뻔하다. 정부가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정책의 후진성이 부끄럽지만, 이제는 효율적 통합과 경쟁력 제고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빨리 정리되어야 한다. 첫째, 고용승계와 생산시설의 지속적 유지문제이다. 빅 딜은 본래 과잉투자를 해소하고 국내기업간 과당경쟁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빅 딜 이후에도 고용이나 사업규모를 축소하지 않고 현재 시설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과연 경쟁력은 어디에서 살아날 것인가. 단지 기업의 수를 두 개에서 한 개로 줄였을 뿐, 과잉투자나 경쟁력 제고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 셈이다. 생산라인이 크게 달라 규모확대에 따른 경제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부채규모만 더 키워버리는 공룡 부실기업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 물리적으로 두 개를 하나로 합한다고 해서 경쟁력이 절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결국 현규모를 완전승계한다는 것은 환상적 목표일 뿐, 시장상황에 맞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둘째, 재벌과 산업정책에 대한 비전이 다시 설정되어야 한다. 정부는 과거와 같은 선단식 재벌을 해체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소수 주력업종을 중심으로 재벌을 특화시켜 세계적 경쟁력을 갖도록 유도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추측도 간간이 흘러나오는 언론의 보도에서 비롯된 것일 뿐, 아직도 2000년을 지향하는 비전이 제시된 것 같지는 않다. 중소기업과 지식산업을 육성한다는 신산업정책도 재벌이후의 대안으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일부에서는 오히려 빅 딜의 추진과정에서 상호출자가 더 많아지고, 일부 재벌은 더 많은 업종에 다각화하며,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기본정책도 후퇴하는 것 같다. 재벌을 형성시킨 유인이 되었던 관치금융이 더 강화되었다는 지적도 많다. 열린 경제에서 오히려 국내재벌만 차별적으로 규제받는 경우도 많아졌다. 따라서 세계화시대에 적합한 규제를 일관되게 추진하던가, 아니면 차제에 국내 재벌에 대한 모든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여야 한다. 오히려 외국기업보다 국내 재벌에 대한 역차별적 규제가 많다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재벌이냐 아니냐를 문제삼지 말고, 모든 기업에 대해 공정한 경쟁을 강화하는 정책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재벌 와해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도 모색되어야 한다. 고용창출과 해외사업의 비교우위, 패키지 딜의 경쟁력, 해외자본 조달의 효율성 등 재벌이 가졌던 순기능들이 어디선가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는 정부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문제이다. 기업은 스스로 시장에서 살아남고, 경쟁력을 잃으면 소리없이 퇴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느 단계에서든 정부가 개입하면 둘이서 같은 배를 타고 위험을 분담한다. 빅 딜 정책도 결국은 그 위험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에 따라 평가될 것이다. 시장의 변화는 정부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장에 맡기라는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항상 시장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큰 손을 주무르는 방식을 과연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가. 보이는 손을 스스로 감출 수 있는 역할정립을 시도해야 한다. 나아가 구미식 기업조직이나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조직, 정부의 과감한 시장개입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문화와 사회 속에 뿌리내릴 2000년대의 기업제도와 정부의 역할을 모색해야만 한다. 이러한 과제야말로 정부가 추진해야할 해야할 진정한 「빅 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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