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서랍속 빼곡히 들어찬 기억들

이진용 개인전서 대형 책장 설치물 눈길


기억과 눈빛 그리고 찰나를 잡아내고 간직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에 인간은 예술을 통해 끊임없이 이를 갈구해 왔다. 극사실적인 묘사력이 탁월한 작가 이진용은 4년 만에 여는 개인전에서 이 같은 욕구를 분출한다. 너비 7.3m, 높이 3.2m의 거대한 책장에 붙은 제목은 ‘내 서람 속의 자연’(The nature inside of the drawerㆍ사진). 외형은 책장이지만 이는 여닫을 수 있는 서랍 300여 개로 이뤄져 있다. 실제 책은 문자로 지식을 전하지만 이 서랍은 보고 만질 수 있는 사물들을 담고 있으며, 작가의 주관적인 기억도 반영됐다. 공룡이 그려진 서랍을 열면 화석이 들어있고 모딜리아니의 ‘여인’이 그려진 서랍에는 모딜리아니와 그 연인의 사진들이 가득하다. 베르메르와 신윤복, 천문학 서적과 성경까지. 작가는 “내게 영향을 준 지식과 경험의 누적이며 작업하는 동안에는 방대한 지식 앞에 경이로움과 초라함을 동시에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는 서랍을 코팅 처리해 감상자가 어느 것이든 열어볼 수 있도록 꾸몄다. 20여년간 조각에 주력해 왔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오랜만에 회화작품을 선보였다. 리히터, 세자르, 엔리오 모리코네 등의 초상화가 눈길을 끈다. 캔버스 대신 비단 천을 사용해 피부결 표현에 신경 썼고, 수염과 머리칼의 볼륨감을 드러내기 위해 그렸다 지운 자리에 다시 덧그리기를 반복했다. 비 내리는 역을 그린 풍경화 ‘시카고’는 튕기는 빗방울, 습기의 표현이 놀랍다. 화가는 ‘비’를 그리기 위해 칼로 깎아 특별 제작한 붓을 썼다. 이진용은 “‘사진처럼 잘 그렸다’는 말은 내게 칭찬이 아니다”라고 전제하며 “얼굴을 그린 게 아니라 살아있는 눈빛에서 인물의 에너지를 보여주고, 사진 같은 풍경이 아닌 찰나를 담고자 했다”고 소개했다.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지난달 23일 시작된 전시는 5월18일까지 계속된다. (041)55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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