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윤은 대세를 낙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변의 백을 곱게 살려 주더라도 외세를 철벽같이 쌓아 가지고 우변의 외로운 백 한 점을 호되게 공격하면 흑이 유망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우변의 백은 심하게 공격 당할 말이 아닙니다."(윤현석) 일단 강동윤은 흑67로 엄습했다. 백68로 벌릴 때 흑69로 근거를 위협한 것은 예정된 수순. 계속해서 흑71로 모자를 씌운 데까지는 검토실의 윤현석과 백홍석이 예상한 그대로였다. 백홍석은 백72까지도 마치 자기가 엊그제 둔 바둑을 복기하듯이 정확하게 예측했다. 그는 참고도1의 흑1 이하 백16까지를 그려 사이버오로의 생중게 사이트에 올렸다. "이렇게 되는 자리지요. 백의 타개가 잘된 모습입니다."(백홍석) 프로들은 남의 바둑을 수십 수씩 예측하곤 한다. 희한하게도 그 수십 수가 그대로 적중할 때도 많다. 루이9단이 즐겨 쓰는 말에 사로(思路)라는 것이 있다. '쓰루'라고 읽는데 우리말에는 없는 중국제 단어이다. 이 말은 아주 묘미가 있다. 프로들의 사로는 유사점이 많다. 생각의 길. 요즈음 전철역에 '스토리 웨이'라는 판매 시스템이 생겼는데 볼 적마다 정감이 느껴진다. 이야기의 길. 생각의 길. 그러고 보니 바둑TV에서 표방하는 '생각의 힘'도 꽤 괜찮은 카드 같다. 백에게 리듬을 주기 싫다면 흑73으로는 참고도2의 흑1에 가만히 뻗어야 한다. 그러나 백4까지 되고 보면 이것 역시 너무도 쉽게 수습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