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7월 13일] 단순함의 미덕이 금융위기 막아

나는 아주 간단하고 조그만 계산기를 갖고 있다. 그래도 그 계산기는 덧셈ㆍ뺄셈ㆍ곱셈ㆍ나눗셈을 할 수 있고 제곱근과 퍼센트(%)를 구하는 기능도 있다. 아마 가끔 이런 기능도 필요할 것 같다. 그밖에 내가 써본 적도 없고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는 기능들이 몇 개 더 있다. 아주 간단한 계산기에도 거의 쓰지 않는 기능들이 꽤 있다. 좀더 비싼 고급 계산기에는 수많은 기능들이 있는데 그들은 거의 평생 쓰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휴대폰도 마찬가지다. 나는 전화 받고 문자를 보내는 것 외에는 거의 다른 기능은 알지도 못하고 쓸 일도 없다. 그 정도면 충분하고 다른 기능을 못 쓴다고 해서 불편을 느끼지도 않는다. 핸드폰으로 '복잡한' 보이스 메일링이라도 오면 화가 난다는 친구도 있다. 그러나 휴대폰이나 PC의 기능은 나날이 발전하고 복잡해지고 있다. 디지털 세대가 아닌 우리 세대는 매일매일 시대변화에 뒤처지는 셈이다. 그러나 복잡한 것이 그렇게 좋은 것인가. 미국 최고의 미술대학,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RISD)의 존 마에다 총장은 "기술의 혁명적 발전이 지나치게 복잡해지면서 정작 인간이 압도당하게 됐다"면서 '단순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마에다 총장은 한국에서도 이미 (단순함의 법칙(The Law of Simplicity))이라는 책으로 이름이 알려진 세계적 디지털 컨설턴트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미디어 아티스트, 컴퓨터 과학자이다. 그는 단순함의 미덕에 주목한다. 기술이 진보할수록 기술이 인간에게 힘들고 고된 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사람이 진보시킨 기술이 오히려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역설이 어디서 오는가. 기술이 발전할수록 통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왜냐? '단순함의 상실'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구글ㆍ필립스와 통신회사ㆍ금융회사 등 수많은 일류 기업들이 단순함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도 금융 공학의 '과도한 복잡함'으로부터 초래됐다는 지적이 있다. 따라서 '단순함'을 통해 인간의 눈높이로 기술을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단초를 제공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일차적이며 결정적인 요인은 단기 급등한 주택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미국 투자은행들이 복잡한 파생상품을 개발함에 따른 감독당국의 규제감독이 불충분했기 때문이다. 지난 1997-1998년 동아시아 금융위기는 근본적으로는 투명성 결여가 원인이었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금융시장은 투명성을 담보할 만한 금융 인프라가 미비했다. 신용평가, 리스크 관리 등이 체계적으로 발달하지 못했다. 리스크 관리가 부실한 것이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그러나 첨단금융시장을 자랑하는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대된 원인은 무엇인가. 규제완화와 정보기술의 발달은 경쟁을 촉진한다. 경쟁은 혁신을 촉진한다. 이에 따라 신상품이 쏟아져 나온다. 금융공학 등은 다양하고 복잡한 파생상품을 개발했다. 한동안 규제완화, 기술의 발달, 경쟁, 혁신, 신상품 개발 등은 금융발전의 주요 요인(key words)으로 강조됐다. 그러나 이들은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훼손하고 위험관리의 장애요인이 돼 금융위기를 초래하는 주범이 될 수도 있다. 무절제한 규제완화, 무제한의 금융혁신, 절제 받지 않는 탐욕 등은 금융위기를 초래한다. 과도한 복잡함은 투명성을 훼손한다. 복잡한 파생상품의 자산가치와 위험수준은 사실상 누구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물론 감독당국ㆍ신용평가기관 등도 첨단금융상품의 위험과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하지 못한다. 이런 상태에서 허술한 금융감독은 과도한 복잡성을 통제하지 못하고 금융시스템의 위기를 초래한다. 금융위기를 방지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시장참여자들이 금융회사가 노출된 위험에 대해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자산가치와 위험수준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는 금융상품은 시장에서 격리돼야 한다. 복잡한 신상품에 내재한 위험을 줄이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투자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상품구조를 단순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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