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강대국의 독무대인 통상 전쟁 한복판에서 고군분투해온 '검투사'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4년 5개월 만에 칼을 내려놓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협상 타결은 물론 국회 비준까지 도맡으며 일에 몰두해왔던 김 본부장은 "이제 야인으로 돌아가 원 없이 쉬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을 전세계 FTA의 허브로 이끈 주역이자 한국 통상정책의 산증인이지만 김 본부장은 개방 반대세력의 비난을 한 몸에 받기도 해 개인적 고충이 컸다. 지난 2006년 FTA 협상 수석대표 당시 미국과의 협상에 밀리지 않기 위해 벼랑 끝 전술을 피하지 않는 등 강공을 구사해 미국무역대표부(USTR) 관계자들이 그를 물러서지 않는 '글래디에이터'라고 불렀을 만큼 강골이다. 2008년 촛불집회를 불러온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놓고 재협상을 관철시킨 것도 결국 김 본부장의 힘이었다.
협상이 한창일 때는 갈아입을 옷을 전하려고 매일 찾아온 부인을 한 번도 만나지 않으며 돌려세운 채 일에 전념해 부하들도 어느 상관보다 믿고 따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집권 이후 한미 FTA가 피지도 못하고 사장될 위기에 놓이자 '쉼표 하나 고칠 수 없다'고 버티다 재협상에 나서기도 했다.
김 본부장은 올 초 번역오류 문제가 불거지자 '책임지겠다'며 용퇴의사를 밝혔으나 '비준안까지 마무리해달라'는 청와대의 요청에 마음을 추슬렀다. 우여곡절 끝에 2011년 11월22일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김 본부장은 다시 '쉬고 싶다'는 의사를 청와대에 전달하며 물러날 준비를 했다. 1974년 외무고시 8회로 공직에 입문한 지 37년 만에 그는 외교부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