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고금리 유혹 못 벗어난 투자자들] "부도 안나면 대박, 잃어도 그만" 묻지마 투자심리 확산

"저금리·횡보장에 투자 대안"으로 판단<br>액면가보다 싼 일부 그룹 회사채에 몰려<br>만기때 정상상환 안될 수 있어 주의해야

동양채권자 비상대책위원회 회원 2,000여명이 지난달 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진상규명과 피해보상 대책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동양 사태 이후에도 고위험 회사채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늘어 피해가 우려된다. /서울경제DB

직장인 김태현(38ㆍ가명ㆍ서울)씨는 최근 동부제철 회사채에 여유자금의 일부를 투자했다. 동부그룹은 시장에서 재무건전성 평판이 좋지 않지만 고수익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이 상품은 현재 기준으로 수익률이 20%가량이다. 김씨는 "기회는 항상 위기 때 온다"며 "투자한 기간에만 회사가 안 망하면 큰돈을 벌 수 있으니까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부 유현숙(42ㆍ가명ㆍ경기 분당)씨는 최근 고위험 채권에 투자해 15%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유씨는 "고위험 채권 덕분에 다른 주식 투자로 손실을 본 원금을 어느 정도 만회했다"며 "적절한 투자시점에 타이밍이 잘 맞았던 것 같다"고 귀띔했다.


우리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 강남센터의 신혜정 지점장은 최근 한 고객으로부터 동양증권 회사채를 구입해도 괜찮겠냐는 문의전화를 받았다. 이 고객은 동양그룹이 안고 있는 부실위험 때문에 투자할지 고민만 하다가 실제 거래를 하지는 않았다. 신 지점장은 "동양 사태 후 동양증권 회사채를 구입하겠다는 고객이 하루 두세 명 정도 있다"고 말했다.

동양 사태로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일부 모험심이 강한 개인투자자를 중심으로 고위험군 회사채의 거래가 활성화되고 있다. 낮은 신용등급 탓에 액면가보다 할인된 가격에 시장에 나온 회사채를 매수, 고수익을 내겠다는 투자전략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수익률에 현혹된 섣부른 투자는 주의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동양 사태 후 회사채 발행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최상위 등급인 AAA등급의 발행 비중이 전체의 절반에 육박했다. 지난달 AAA등급의 회사채 발행액은 2조5,949억원으로 전체의 44.4%를 차지했다. BBB등급은 전달보다 1,450억원 감소한 750억원(1.3%)이었고 투기등급인 BB급 이하는 92억원(0.2%)에 불과했다. 불확실한 회사채에 대한 신규 발행 수요가 급격히 감소한 것이다.

고위험군 회사채의 신규 발행 수요는 전무하다시피한 반면 유통되는 회사채에 대한 투자 수요는 적지 않다. 리스크 요인을 알면서도 투자를 강행하는 것은 저금리와 횡보장 속에서 위험성은 있지만 고수익을 낼 수 있는 대안투자처라는 판단에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원금 회수에 집착하지 않을 정도의 여유자금을 부실 우려가 있는 회사채에 투자해 수익이 나면 '대박'이고 '돈을 잃어도 그만'이라는 투자심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회사 평판 리스크로 저가 물량이 쏟아져 차익거래를 기대하는 수요도 가세하고 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들은 싼값에 물량을 던졌는데 고위험ㆍ고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들은 이 물량을 받아 수익을 노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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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투자하는 주요 종목은 주식 시장에서 동양 이후 위기설이 거론됐던 이른바 '2D2H(동부ㆍ두산ㆍ현대ㆍ한진)'의 회사채들이다.

시장에서 문제를 일으켜 신뢰를 잃은 동양그룹 계열사 회사채를 사겠다는 투자자도 나왔다.

동양 회사채 피해자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에는 ㈜동양과 동양시멘트ㆍ동양증권이 발행한 회사채를 매입하고 싶다며 매도할 의향이 있는 투자자들은 연락을 달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있다. 이 글을 올린 투자자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최근 동양 사태로 가격이 급락한 동양그룹 계열사 회사채를 매입했다가 나중에 기업회생 계획이 마무리되면 높은 가격에 되팔아 수익을 올리기 위한 전형적인 고위험 투기성 투자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의 경우 법정관리 진행과정에서 채무상환계획이 어떻게 될지 불투명한 상태이기 때문에 동양 회사채 매입은 상당한 위험이 수반되는 고위험 거래라고 지적했다. 부도 때 원금 회수가 불투명한 처지에 놓일 수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높은 수익률에 현혹돼 리스크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섣부른 투자는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도 나온다.

한 채권담당 연구원은 "현재 투자수익률이 10% 후반에서 20% 이상으로 높게 나온다고 해도 이 수익률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회사채 만기 때 정상 상환이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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