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글로벌 스탠더드의 허와 실] <하> 코리안 스탠더드를 만들자

환란후 미국식 일방통행 "이젠 바꿔야"<br>정부보단 국회가 나서 '한국식 규율' 만들고 이사 선임시기 조절등 민간차원 대응도 필요


제너럴모터스(GM)의 추락과 도요타의 1위 예약.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올 신년 시리즈 제목을 ‘일본의 힘’으로 내걸었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치욕’까지 맛본 일본이 정년연장 등 종신제에 기반한 그들만의 시스템, 즉 ‘재팬 스탠더드’를 통해 부활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외환위기 7년여.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 이후 일방통행으로 형성됐던 미국식 질서를 새롭게 바꿀 변곡점에 놓여 있다고 강조한다. 출자총액규제 등 시장개혁 로드맵의 종료부터 금융시장의 2차 빅뱅을 예고하는 자본시장 통합법까지…, 산업과 금융자본의 지배구조가 올해와 내년에 송두리째 바뀐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앞으로 2년은 환란 후 만들어진 질서를 재편할 중요한 시점”이라며 “경쟁적으로 도입했던 각종 규제에 대한 심도 있는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국만의 히스토리’가 없다=정부의 한 관료는 환란 이후 들여온 글로벌 스탠더드를 언급하면서 “전쟁에 처음 나간 병사가 앞도 안 보고 총을 쏘다 덴 형국”이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캐논의 성공신화를 일군 미타라이 후지오 사장은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와 미국식 스탠더드를 혼동해서는 안된다”며 “미국 기업이 효과를 거둔 방식이 일본이나 한국에서도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충고했다. 이승철 전경련 상무도 “그 나라의 문화에 따라 기업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우리는 정부가 기준을 결정하다 보니 획일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양극화 문제도 결국에는 개념도 애매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얻기 위해 써버린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적대적 M&A 규정은 비틀어진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국의 경우 적대적 M&A의 공격과 방어를 모두 쉽게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스탠더드앤푸어스(S&P) 500대 기업 중 55%가 독약처방을 도입하고 있다. 반면 유럽은 공격과 방어를 쉽게 하지 못하도록 하고 제도적 측면에서도 의무공개매수제도가 대부분이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공격자에게는 미국식을 준용하면서 방어자에게는 영국보다 못한 제한적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안 좋은 것만 선택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국만의 ‘히스토리’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식 규율’ 을 찾아라=재정경제부의 한 당국자는 “새로운 방어책을 만들 정도의 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자조했다. 동북아허브를 표방하면서 함부로 제도를 만들 수 없다는 것. 제프리 존스 주한 미상공회의소(암참) 명예회장도 “섣불리 보호책을 만들 경우 경제 전체를 오히려 취약하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흥식 금융연구원장은 “정부가 나서서 새 방어도구를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정부가 아닌 의회가 나서는 방법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경 열린우리당 의원이 준비 중인 ‘한국판 액슨플로리오법’이 바로 그 같은 경우에 해당된다. 민간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존스 회장은 “한국의 법 체계에서도 적대적 M&A를 효과적으로 대응할 방법이 많은데 경영진이 잘 이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이사 선임시기를 조절하는 등의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금융기관의 보호를 위한 방안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최 원장은 “네덜란드의 경우 1ㆍ2위 은행인 ABN암로와 ING베어링이 5%씩 지분을 상호 보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국민연금ㆍ한국투자공사(KIC) 등 국내 기관 자금을 미국의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펀드(캘퍼스)ㆍ싱가포르투자청(GIC)에 버금가는 규모로 성장시키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도 요구된다. ◇코디네이터가 필요하다=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안 외에 난잡한 규제 체계도 서둘러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공정거래법, 금융산업규제에 관한 법, 상법, 증권거래법 등에 흩어진 법 조항들은 전문가들조차 알기 힘들 정도. IMF 후 ‘기업규제=선진정책’의 등식이 성립되면서 부처마다 경쟁적으로 도입한 탓이다. 노진호 현대경제연구원 금융분석팀장은 “여과과정도 없이 들여온 제도들이 글로벌이란 이름만 달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부처간 코디네이터(조정자)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다. 금감위의 한 고위 관계자도 “관련 법령 하나를 바꾸려면 재경부는 물론 법무부까지 모두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 법안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바꾸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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