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의 마음은 지극히 인자하고 만물의 영장은 사람이다. 따라서 천지는 사람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고 해로움을 제거해주고자 하여 안달이 날 지경이다. 이 풀(담배)이 이 시대에 출현한 것을 보면, 천지의 마음을 엿보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요즘같이 담배가 죄악이 된 시기엔 상상할 수 없지만, 정조는 친히 신하들에게 글을 내려 이같이 물었다. 지금도 규장각에 남아 있는 '남령초책문'의 일부다. 남령초는 담배의 다른 말이고, 책문은 임금이 신하에게 정책을 질문하는 시험. 다시 말해 왕이 신하들을 모아놓고 담배를 대중에게 널리 알릴 방법을 묻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담배는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유럽에, 그리고 포르투갈 상인이 아시아에 퍼뜨렸다. 때문에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담배 명칭은 포르투갈어 '타바코(tabaco)'와 비슷하다.
담배를 배운 건 일본이 한국이나 중국보다 빨랐다.
1590년께 일본에 전파된 담배는 10여 년 만에 차와 함께 양대 기호품으로 자리 잡았고, 다시 20~30년이 지나면 한국과 중국도 같은 상황이 된다.
하지만 그 유행의 정도라는 것이 심각했다. 저자에 따르면 300여 년 조선인의 흡연율은 평균 35~40%, 지난해 한국 흡연율 21.6%의 곱절 수준. 당시 흡연으로 인한 질병 증가와 담배 경작면적 확대로 인한 부작용이 컸지만, 무엇보다 남녀노소·상하 질서가 뚜렷했던 유교 사회가 특히 이를 못 견뎌 했다. 부인이 신랑 앞에서 곰방대를 물고, 어린아이나 노비까지 연기를 뿜어댔다. 담배를 매개로 남녀가 말을 트고 양반이 상민에게 담배를 빌리는 지경이 됐다. 당연히 정부에서도 반대여론이 들고 일어났다. 그 가운데 애연가였던 정조가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 셈이다.
저자인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담배와 흡연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조선 후반 300년 역사를 비추는 거울'로서의 문화사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앞서 말했든 남녀노소나 양반·노비 할 것 없이 사람들의 일상에 담배가 깊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 머리말에서 안 교수는 "문화를, 취향을, 문물의 전파와 정착을, 사회상을 담배를 빼놓고는 실감나게 말하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요즘처럼 정부의 담뱃값 인상으로 시끄러운 시기에 굳이 담배 이야기를 꺼내게 된 이유다.
이미 저자는 2008년 조선 정조 때 문헌을 번역한 '연경(烟經), 담배의 모든 것'을 선보였고, 이후 2013년 말부터 10개월여 인터넷으로 연재한 담배 이야기를 이번에 책으로 묶었다. 3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