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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SectionName(); "여기는 치욕의 한일병합조약 체결 장소" 남산 '통감관저'터에 표지석 세우기로 김능현기자 nhkimchn@sed.co.kr 서울 중구 예장동 서울유스호스텔 진입로 오른쪽에 보이는 소공원이 일제의 통감관저(후일 총독관저)가 있던 자리다. /서울경제 자료사진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한일병합조약의 체결장소로 경술국치의 현장이었으나 흔한 알림판 하나 없이 방치됐던 서울 남산의 '통감관저(統監官邸)'터에 비로소 작은 표지석이 세워진다. 25일 서울시에 따르면 일본 강점기 때 통감관저가 있었던 남산 서울소방방재본부 부근 공터에 한일병합조약의 체결 장소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세울 계획이다. 통감관저는 이토 히로부미 등 한국 침략을 진두지휘했던 일본인 통감이 거처하고 집무를 하던 곳으로 강제병합 이후에는 1939년 경무대(현재 청와대)로 이전할 때까지 총독관저로 쓰이기도 했다. 식민통치의 정점에 있던 사람의 집무 및 주거공간으로 쓰였다는 점만으로도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이지만 통감관저가 기억돼야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총리대신 이완용이 1910년 8월22일 데라우치 마사타케 통감을 만나 강제병합을 인정하는 조약에 도장을 찍은 치욕스러운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통감관저는 이처럼 나라의 주권을 타국에 넘긴 부끄러운 역사를 되새기게 하는 곳이지만 최근까지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덕수궁 중명전이 지금까지도 외형을 유지한 채 부끄러운 역사의 교훈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통감관저는 해방 이후 '민족박물관'과 '연합참모본부' 청사로 쓰였지만 옛 중앙정보부 관할 구역으로 이 일대의 출입이 통제된 후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망각 속으로 잊혀가던 통감관저의 위치를 다시 찾아낸 이순우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 소장은 "현재 있는 건물을 보존하는 것은 괜찮지만 오래 전에 사라진 일제 건물을 복구하는 것은 국민정서상 어려워 보인다. 다만 장소가 훼손되지 않도록 보존하고 어떤 형태로든 표석이라도 만든다면 경술국치 100주년을 짚고 가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통감관저 부근에는 조선총독부 옛 청사(현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등 일제 지배기구의 흔적이 많이 있는데 이를 한데 묶는다면 생생한 역사교육 장소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