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차이나 스탠더드에서 살아남기


베이징시에 소재한 국가급 경제개발구인 이좡에서 화학공장을 운영하는 한국계 기업인 A사는 최근 중국 세무당국으로부터 공회(公會) 경비를 납부하라는 고지서를 발부받고 고민에 빠졌다. 노조에 해당하는 공회 조직이 없는데 공회 경비를 납부하라는 게 선뜻 이해가 안 되지만 납부를 안 하자니 서슬 퍼런 세무당국의 후환이 두려운 게 사실이다. 지금까지 기업에 공회 설립은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이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공회 경비 세무대리 징수'라는 규정을 만들어 내년 1월부터 세무당국이 기업을 상대로 공회 경비를 징수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공회가 없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기존에 공회가 있는 회사와 같이 임금소득의 2%를 '공회 설립 준비금' 명목으로 징수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규모의 기업이 징수 대상이 되는지 등의 구체적 규정이 알려지지 않아 외자계 기업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지난 30여년간 개혁ㆍ개방으로 선진 글로벌 스탠더드를 학습하며 놀라운 경제 성과를 이룩한 중국이 이제는 나름의 '차이나 스탠더드'를 만들어가는 셈이다. 공회는 편의상 노조로 해석되지만 서방식 노조와는 실체나 성격이 판이한데다 세무당국이 공회 경비를 근로자가 아닌 기업에 조세 징수하듯 걷는 것도 독특하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이 같은 공회의 성격을 십분 활용해 근로 정책을 반영시키는 것은 물론 전국의 근로자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적인 근로자 임금 인상의 도화선이 됐던 거대 정보기술(IT) 업체 팍스콘의 노사분규에는 중국 공산당의 소득분배 강화 정책에 따른 중앙 공회조직의 암묵적인 지원이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중국 진출 외자계 기업들에는 근로자 임금 상승과 함께 이 같은 차이나 스탠더드의 압박이 경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10월15일부터 외국인 근로자를 상대로 시행된 양로ㆍ의료 등 5대 사회보험법 의무 가입 규정도 외자계 기업에 부담을 지우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외국 기업은 근로자 임금의 32%를 추가로 보험료로 납부해야 한다. 이 중 실업과 양육(출산)보험은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중국만의 의무 가입 규정이라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 기업들은 이처럼 빠르게 바뀌고 있는 중국식 룰에 어떻게 적응해나갈지 혼란스워하고 있다. 기업들은 경영환경이 최대한 예측 가능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중국 당국과의 협상을 통해 불확실성을 해소해줘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국 정부는 양로 등 일부 사회보험에 대한 한국 근로자의 납부 면제를 위해 중국 당국과 내년 1월에 실무 전문가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갈수록 거세질 중국의 차이나 스탠더드 강요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정부의 지혜로운 대처와 교섭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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