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목포에서 자라 성장하고 이순의 나이를 훌쩍 넘기도록 45년 동안 사업의 길을 걸어왔다. 1970년대 수산물 수출업에 종사했고 보세 운송도 경험해봤다. 사업하는 틈틈이 공부해 최근에는 '전남 제조업 효율성과 수출경쟁력'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3년 연속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하면서 '1조달러 클럽'의 9개국 중 한자리를 당당히 차지했다는 것이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돌이켜보면 1946년 3,500만달러 수출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상전벽해(桑田碧海)요,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그 과정에서 수출 품목은 크게 변했으며 얽힌 사연 또한 많았다. 한때 하늘이 우리나라를 도우려고 오징어를 내려 보냈다는 말이 있었다. 마른오징어는 '살아 있는 로켓'으로 불리며 1960년대 효자 수출 품목이 됐었다. 머리카락을 잘라 시장에 팔아서 동생 학비를 지원했던 여인들의 감동 스토리는 가발 수출이 한창이던 시절의 애잔한 이야기다. 심지어 오줌·돼지털·메뚜기까지 내다 팔았던 게 초창기 무역의 현실이었다. 한국이 실질적인 무역국가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74년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하고 이듬에 포니 승용차 5대를 에콰도르에 수출하면서부터다.
이후 수출 품목은 원자재에서 최첨단 소재인 반도체·LCD·선박·자동차·화학석유제품·휴대폰에서부터 문화상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화·선진화됐다. 이제 원자력까지 수출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글로벌 국가가 됐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10대 주력 품목이 전체 수출의 50%를 넘는다는 것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무역진흥확대회의가 4회째를 맞고 있는 것 역시 수출 품목 다양화 및 수출국 다변화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기초소재를 만들고 한국이 부품 중간재를 생산해서 중국이 최종 조립하는 구조가 가장 이상적인 무역구조라고 한다. 하지만 미·일 양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양적완화 정책으로 환율을 평가절하해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려고 한다. 이러한 국제 현실 속에서 우리의 현주소를 명확히 파악하고 중국과 일본이라는 넛크래커에 끼인 신세가 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힘써야 한다. 특히 수출 품목 다변화 외에 필수 수입 원자재의 안정적 확보, 대체 원자재 개발 역시 시급하다. 수출상품의 가치를 제고하고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의 수출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동반돼야 한다.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 아웃소싱의 매력은 점차 줄어들고 공장이 본국으로 돌아오는 '리쇼어링(reshoring)' 바람이 불고 있다. 정부도 유턴하는 기업에 지방소득세를 5년간 면제해주는 방안을 내놓았으며 유턴 기업의 성장을 독려하고 있다. 국내로 다시 돌아온 기업이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기업가 정신과 기술은 다듬으면 다듬을수록 더욱 빛이 나는 법이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노력할 때 수출의 금자탑이 만들어지고 수출경제의 꽃이 활짝 펴 그 열매를 온 국민이 향유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