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7월 1일] 원안 세종시의 미래

2차 세계대전 때 나치독일은 유럽의 도시들을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파괴해나갔다.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초토화 작전을 편 것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전쟁이 끝나자 폐허에 사람이 몰려들고 도시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사람이 아무 곳에나 살지 않으며 더구나 집단적 거주를 위한 복합적 유기체인 도시는 여러 조건이 맞지 않으면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로 종종 인용된다. 인위적으로 도시를 없애는 일이 어렵다면 새로 만드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치의 벽에 좌절된 원윈 지난 10여개월 동안 나라를 들끓게 한 세종시 수정법안이 국회 표결에서 부결됨에 따라 폐기처분되는 운명을 맞았다. 수도분할이 걸린 국가적 대사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싱거운 결말이다. 지역과 국가가 윈윈하는 합리적 선택보다는 정치적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정치논리의 완벽한 승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수 있다. 승리의 축배를 들기는 아직 일러 보인다. 원안 세종시의 미래를 낙관하기도 어렵지만 사실상 수도분할이 몰고 올 역풍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정안 부결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대ㆍ고려대 등은 과학벨트가 없다면 갈 이유가 없다며 캠퍼스 건설 계획을 거둬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던 삼성ㆍ한화ㆍ웅진 등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차원에서 입지조건을 저울질하고 최적지가 아니면 외면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고민이다. 세종시가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이 그만큼 나빠지고 있는 셈이다. 도시다운 도시 형성의 일차적 필요조건은 사람이 모여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산업기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쑥쑥 성장하는 당진ㆍ거제ㆍ울산ㆍ포항 등은 도시의 생명력이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준다. 원안 세종시의 뼈대인 행정부처들의 인원은 많게 잡아도 1만5,000명이 채 안 된다. 세종시 원안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도 여기에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짚어봐도 낙관적이지는 않다. 세계 최저 출산율에 따라 오는 2030년께부터 맞게 될 절대인구의 감소는 세종시 미래에 치명적인 제약요인이 될 수 있다. 더구나 광활한 새만금의 본격적인 개발에다 전국적으로 10여개에 달하는 혁신도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특별한 경쟁력도 없는 세종시에 사람 채우기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어디선가 사람들을 빼오는 데 성공하더라도 국가적으로 보면 잘해야 제로섬 또는 마이너스섬 게임에 불과하다. 수정안에서 제시된 과학비즈니스벨트가 탐나지만 절충은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두번이나 사과하면서 호소한 수정안을 퇴짜 맞은 현정부로서는 가당치 않은 요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도분할 멍에 짊어진 도시 최악의 상항은 도시다운 도시가 되지도 못하면서 수도분할이라는 기형 때문에 국가적으로 엄청난 고통과 비용만 초래하는 경우이다. 사실상 수도 쪼개기인 원안이 완전한 수도이전, 기업도시ㆍ산업도시ㆍ대학도시 등 다양한 도시형태의 대안 중 최악이라는 비판도 여기서 비롯된다. 애당초 정치적 계산에 의한 수도이전 발상에서 비롯된 원안 세종시는 비좁은 국토에 두개의 수도를 갖는 결과로 이어지게 됐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된 세종시 수정안이 끝내 정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되기는 했으나 원안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세밀하게 조명하는 기회를 가진 것을 작은 위안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인위적으로 도시를 없애거나 만드는 것이 지난하다는 역사적 경험은 반쪽 수도 세종시가 두고두고 국가에 짐이 될 것이라는 불길한 경고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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