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경제가 시계(視界)제로인 상태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대응전략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회복이 불투명한 미국 경기, 장기 복합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남미발 외채 위기, 터키의 국가부도(디폴트)위기 등 곳곳이 지뢰밭이다.자칫 실수로 지뢰를 밟게 되면 엄청난 후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화, 개방화의 확산으로 이 지뢰밭은 피해갈 방법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일일이 제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설상가상으로 경기침체로 동병산련을 겪고 있는 세계 각국은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주의로 무장된 통상조치를 앞다퉈 취하면서 무역분쟁의 불씨도 훨훨 타오르고 있다.
지뢰밭은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내에도 곳곳에 숨어 있다. 현대건설,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 현대투신증권, 대우자동차, 쌍용양회 등 5대 부실기업처리가 경제의 숨통을 죄고 있으며, 기업ㆍ금융ㆍ공공ㆍ노동 등 4대부문 구조개혁 작업도 아직 갈길이 멀다.
◆ 불확실성 제거
정부 대응전략의 출발점은 내부의 불확실성 제거다. 요동치는 세계경제에 정면으로 맞서기 보다는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요인들을 찾아 뇌관을 제거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복안이다.
방어에 충실하면서 경기가 좋아질 때 다른 나라보다 높게 뛰어오를 수 있도록 체질을 다져놓겠다는 게 정책당국의 기본 전략이다.
외환위기이후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심화돼 세계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7년 이전 우리나라의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정도였으나 지난해 45%까지 높아졌다.
안타깝지만 가뭄에 하늘만 바라보듯 미국 경기만을 지켜봐야 한다. 천수답경제의 애환이다.
◆ 구조개혁 지속
세계경제가 죽을 쑤고 있는 판에 국내 경제만 독야청청 잘 될 수는 없다는 것은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
하반기 회복을 자신하던 재정경제부는 하반기 경제운용방향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하반기이후 우리 경제의 회복 시기와 폭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의 회복정도에 달려있다고 종전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또 빠뜨릴 수 없는 게 있다. 3년째 지속되고 있는 구조개혁이다. 구조개혁 여부에 따라 국내 경기가 회복의 급물살을 탈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 일본의 복합불황을 답습할 위험에 빠질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구조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가운데 체질강화에 주력할 계획이다. 5대 부실기업이 어떻게 처리되는 가도 경기흐름을 뒤바꿔놓을 수 있는 중대 변수다. 최근 개최된 금융발전심의회가 금융개혁과제의 최우선순위로 남아있는 금융, 기업관련 현안과제의 신속한 처리로 정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 정국 안정, 원만한 노사관계 회복이 더욱 중요하다
정부의 거시경제운용 방향의 큰 줄기는 물가안정과 건전재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안에서 경기회복을 뒷받침하는 제한적 경기조절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5조원대의 추경을 편성하고 양도세 감면범위를 확대해 투자가 활성화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 하반기에는 기업과 금융의 규제를 최대한 풀어 경기활성화를 앞당기기로 했다.
통상파고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양자간, 지역간, 다자간 통상협력도 강화할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치와 노사관계가 안정되지 않는 이상 정부의 대응전략은 한없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 금융이용자보호법등 경제현안들은 정치권의 다툼으로 구석에 처박혀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국와 노사관계 등 대화로 해결이 가능한 불확실성부터 제거돼야 경기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