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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씨 별세] 불꽃처럼 살다간 ‘무쇠팔’

1984년 한국시리즈서 '나홀로 4승' 불멸의 기록<br>은퇴 10년 만에 지도자 복귀… 1군 감독 꿈 끝내 못 이뤄

53세를 일기로 타계한 '무쇠팔' 최동원은 경남고ㆍ연세대를 거쳐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에서 맹활약하며 한국 야구 100년사에서 선동열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과 더불어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고인은 금테 안경을 끼고 역동적인 투구 자세에서 뿜어나오는 시속 150㎞를 넘나드는 빠른 볼과 낙차 큰 커브를 앞세워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타자를 요리하던 마운드의 지배자였다. 신생 NC 다이노스의 구단주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자신의 우상이었다고 밝힐 정도로 한국 야구사에 남긴 발자취는 크고 뚜렷했다. ◇1984년 한국시리즈서 4승 챙겨 '철완' 각인=최동원은 경남고 2학년이던 1975년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작성해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이듬해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승자결승에서 군산상고를 상대로 당시 전국대회 최다 탈삼진(20개)을 뽑아내 초고교급 투수 반열에 올랐다. 패자전을 치러 다시 올라온 군산상고와의 최종 결승에서도 삼진 12개를 솎아내며 5대0 우승을 이끌었다. 연세대를 거쳐 1981년 실업야구 롯데에 입단한 고인은 그해 17승1패라는 빼어난 성적을 거두고 실업야구 3관왕(최우수 선수, 최우수 신인, 최다승리투수)에 오르며 국내 최고의 에이스로 군림했다. 현역 시절 최고시속 150㎞를 웃도는 강속구와 낙차 큰 커브가 주 무기였던 그는 특히 타자를 압도하는 승부근성과 눈부신 연투능력으로 '무쇠팔'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태극 마크를 달고 출전해 한국의 우승에 힘을 보탰던 고인은 이듬해 연고 구단인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다. 데뷔 첫해에는 9승16패4세이브, 평균자책점 2.89로 눈에 띄는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1984년 51경기에 등판해 14차례나 완투하며 27승13패6세이브(평균자책점 2.40)라는 한국 야구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기록을 남기고 자신은 정규리그 MVP, 팀에는 한국시리즈행이라는 영광을 안겼다. 그해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는 1ㆍ3차전과 5~7차전 등 총 5차례나 등판해 6차전 구원승을 빼고 1ㆍ3ㆍ7차전에서 모두 완투승(1차전 완봉승)을 거두는 투혼을 발휘하며 롯데를 우승으로 이끌어 진정한 철완의 탄생을 알렸다. 프로야구 30년 동안 7전4선승제로 열리는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올린 투수는 최동원이 유일하다. 이후에도 고인은 1985년 20승, 1986년 19승, 1987년 14승을 거두며 롯데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1986년과 1987년에는 세 차례에 걸쳐 선동열(해태)과 역사에 남을 선발대결을 펼쳤으나 1승1무1패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프로야구선수회 창립 주도하다 트레이드=그러나 고인은 현재 프로야구선수협회의 모태 격인 선수회 창립을 주도하다 실패, 1988년 11월 삼성의 간판투수였던 김시진과 맞바뀜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야구에 흥미를 잃은 그는 1989년 후반기에서야 삼성에 복귀했고 8경기에서 1승2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이듬해 6승5패1세이브라는 성적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프로 통산 8년 동안 103승74패26세이브, 평균자책점 2.46의 기록을 남겼다. 통산 248경기 중 3분의1에 가까운 80경기를 완투(완봉은 15차례)로 장식해 강한 어깨의 대명사로 통했다. 논리 정연한 말투로 프로야구 선수들의 단합을 이끌었던 걸물답게 은퇴 후 정치에 눈을 돌려 1991년 지방의회 선거 때 당시 여당이던 민자당의 텃밭 부산 서구에서 민주당 간판을 달고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후 고인은 방송사 해설위원, 라디오 쇼 진행자, 시트콤 배우 등으로 색다른 인생살이를 하다 은퇴 10년 만인 2001년 한화 이글스 코치로 야구판에 복귀했다. 2006년부터 3년간 한화 2군 감독을 지냈고 2009년에는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감독관으로 그라운드를 지켰다. 하지만 야구 지도자로서 재기를 노리던 고인은 2007년 갑작스럽게 찾아온 대장암을 이겨내지 못했다. 프로야구 구단의 1군 감독으로 뛰어보겠다는 소망도 미완의 목표로 남긴 채 팬들과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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