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는 침묵이 웅변보다 낫다고 했으며 동양에서는 삼사일언(三思一言), 즉 세번 생각하고 한번 말하라고 했다. 이는 말을 조심하라는 교훈들이다. 범인(凡人)에게도 이러한 덕목이 강조되는데 하물며 국가 수장인 대통령이 언어 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최근 대통령의 실언과 허언은 도가 지나치고 있다.
우선 실언을 보자. 대통령은 지난 2월 유럽 순방 교민간담회에서 대북 지원을 마샬플랜에 비유하며 북한이 달라는 대로 줘도 남는 장사라고 했다. 나아가 북한 지원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며 북핵 문제가 해결돼 북한 경제가 개발된다면 한국 경제가 재도약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잘될 것 같은 느낌이 있다고 했다. 과연 그런가. 대북 지원으로 북한의 현체제가 지속되는 것이 남북 화해협력에 순기능만 할까. 강성대국을 표방하는 북한이 앞으로 핵을 포기할까.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경직된 통제경제 체제인 북한이 경제개발을 이룰 수 있을까. 남북 경제교류가 일방적 지원이 아닌 윈윈게임이 되려면 수많은 난관이 해결돼야 한다. 정책결정가는 상대방ㆍ우방ㆍ자국민 등 많은 이해관계자들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해야 한다. 희망사항을 말하면 듣는 이로부터 신뢰성만 잃는다.
또한 3월 중동 순방 중 사우디아라비아 교민간담회에서는 한국이 살자면 친미도 하고 친북도 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진심이라면 대통령의 남북문제 인식과 전략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북한을 동등한 격의 상대로 생각하는 것은 대한민국 안보전략의 혁명적 전환이다. 국제관계가 힘의 논리뿐 아니라 신뢰와 가치의 공유에 의해서도 움직인다는 것은 교과서적인 이야기다. 6자 회담의 재개에서 보듯이 북한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불행하게도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앞으로 북핵을 해결하는 데도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일 것이고, 만약 북한이 기존 핵을 보유하게 되면 한반도의 군사력 균형을 보장해주는 것도 미국밖에 없다. 북한이 있는 한 우리가 미국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대북정책ㆍ통일정책도 미국과 동맹관계를 굳건히 하면서 추진해야 효율성을 갖는데 대통령의 실언으로 미국의 신뢰를 잃는다면 이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다음으로 허언을 보자.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현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대통령 주변 인물들이 그동안 대북 비밀접촉을 벌여왔다. 이러한 활동은 대통령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하다. 비선을 구축해 민간인이 비밀리에 대북접촉을 하는 것은 남북교류협력법과 남북관계발전법이라는 실정법의 위반이다. 판사 출신인 대통령이 실정법을 위반하는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더욱이 이런 방식으로 대북접촉을 하면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이라는 공적인 정부 대북접촉 창구는 권위가 흔들리게 된다.
북한은 정상회담을 위한 논의(정상회담이 아니다)를 하는 조건으로 50만달러의 현금을 요구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현정부가 정상회담을 요청하는 모양새인데 임기를 1년도 남기지 않은 한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북한이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2000년 정상회담도 현금을 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빛이 바랬다. 정상회담을 한들 앞으로 대북관계는 어차피 다음 정부의 몫이다. 혹시 역사에 개인적 치적을 남기고 싶으면 본인의 돈을 사용하는 것이 떳떳하다. 별다른 성과도 기대하기 힘든 정상회담에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한편 3월 쿠웨이트 국빈만찬에서 일개 북한 대사를 만난 대통령은 “가시거든 전해주세요. 진심으로 합니다”고 말했다. 짝사랑을 해도 낯이 간지러워 이런 말은 잘 하지 못하는 법이다. 주체사상으로 똘똘 뭉친 김정일과 북한 지도부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는 불문가지다. 대통령은 말을 할 때 국격을 생각해야 한다. 일언기출 사마난추(一言旣出 駟馬難追). 한번 입 밖에 낸 말은 네 마리 말이 이끄는 빠른 수레로도 쫓아가지 못한다.
남북관계는 특정 정치지도자나 정체세력이 아닌 민족 모두의 대과업이다. 크고 넓게 보면서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대통령의 ‘진심’ 발언으로 국민이 혼란스러워지는 일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