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홍일표의 여의도 칼럼] 김우중 다시 보기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

‘김우중과의 대화’를 읽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우선 인간 김우중은 역시 거상(巨商)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그는 경영의 천재였다. 젊은 시절에 한성실업이라는 조그만 회사에 입사하여 그동안 해오던 업무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나감으로써 큰 이익을 거두게 한 것은 그의 천재적인 경영능력이 드러나기 시작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그의 안목은 항상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도전과 창의의 실현과정이었다.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하던 때에 아프리카와 동구권에 관심을 갖고 그곳의 시장을 개척해 나아간 과정은 미국의 역사에서 미국인들이 프런티어정신으로 서부를 개척해 나아간 과정 못지않은 우리나라 경제영토의 확장사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미국의 서부는 개척이후 발전을 거듭하여 미국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있는데 반하여, 대우가 개척한 시장들은 김우중의 몰락과 함께 더 이상 발전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물론 대우의 개척이 우리나라의 다른 기업들이 진출하는 발판이 되는 등으로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김우중의 표현대로 ‘흔적’이 남은 것은 틀림없으나, 그가 원래 꿈꾸었던 대로 열매 맺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임이 틀림없다.


대우의 몰락이 정당한 것이었느냐의 여부는 어려운 문제이다. 당사자들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IMF(국제통화기금)의 문제해결 방식에 관하여는 뒷말이 많았다. 구조조정이라는 가혹한 방식으로 수술을 하여 우리의 알짜 기업들이 헐값에 서구 자본에 넘어간 것이 수두룩하다보니 이것이 누구를 위한 개혁이었나 하는 의문들이 제기되었다.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대우가 해체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당시의 문제 해결방법으로 IMF의 권고를 따랐고, 이후 불어닥친 제2의 금융위기를 잘 견디어 내었다. 이 때 세계 각국에선 한국은 IMF때 구조조정을 철저히 한 탓에 체질이 강해져 웬만한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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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느 것이 최선인지는 알 수 없다. 역사의 가정이란 그 역사가 흐르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수많은 변수를 도외시하는 것이므로 별로 생산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가 무엇이 최선이었나를 반추해 보는 것 자체를 금기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하는 태도를 견지한다면 과거의 처방이 잘못되었다고 항변하는 목소리를 애써 도외시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김우중의 경영철학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사회적 책임) 정신이다. 그는 외국에서 기업을 하면서 이익의 50%는 무조건 그 나라를 위해 쓰고자 하였다. 특히 아프리카나 동남아에서는 거기서 번 돈의 절반을 그 나라가 가장 필요로 하는 주택, 병원, 학교, 도로 개설, 장학금 지급 등에 아낌없이 썼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그 나라에서 더 많은 수주를 할 수 있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더 큰 돈을 벌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시장주의가 확립되지 않은 저개발국이나 신흥국에서 정부의 규제라는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였다. 또 신흥국에서 흔히 거론되는 사업의 대가로 권력자로부터 요구받는 검은 돈을 피해가는 길이기도 하였다.

김우중의 그동안의 활동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의 남북관계에 대한 노력과 비전이다. 그는 과거 1980년대부터 한국 정부의 위임을 받아 김일성과 김정일을 모두 20여회나 만났다고 한다. 그러면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고, 남북간의 긴장완화와 경제교류 확대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의 통일에 대한 비전은 분명하다. 점진적 교류를 통해 통일과정으로 나아가되, 통일이 되면 선진국이 되기가 훨씬 쉬워진다는 것이다. 통일비용보다 통일로부터 얻는 이익이 크다는 것이다. 국내의 임금인상 등으로 경공업 등 저부가가치 산업은 이제 동남아 등으로 넘겨야 하는데 통일로 북한의 인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이를 더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북한을 개방시키기 위해서는 북한내에 공단을 세우기보다 북한과 접해 있는 중국의 동북3성에 한국이 기업을 세우고 북한 인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한다. 그 인력이 수십만, 수백만으로 증가하게 되면 북한을 사실상 개방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동북3성에의 인력 파견은 물론 북한 정권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한 북한의 개방 유도는 그가 세계경영과 남북관계에 깊이 관여하면서 내린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 한 때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제교사였다는 그의 비전에서는 DJ가 강조했던 이른바 ‘상인적 현실감각’이 물씬 풍긴다. 그래서 더욱 실현가능성이 높아 보이기도 한다.

그는 이미 1989년에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으로 젊은이들의 도전정신을 고취시켰다. 그리고 일선 후퇴를 겪고 난 후 2012년에 베트남에서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s)이라는 청년들을 위한 경영사관학교를 세워 한국의 젊은이들을 데려다가 일정한 교육을 시킨 후 베트남의 각 기업체에 취업시켜 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2015년까지 500명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고, 곧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미얀마에도 같은 과정을 개설하려고 한다. 그의 평생에 걸친 신념은 좁은 국내에만 안주하지 말고 드넓은 세계로 눈을 돌려 도전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베트남의 중소기업에 취업하여 첫술에 만족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내에서 눈만 높아 대기업만 쳐다보며 실업자로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치며 일을 배우라는 것이다. 그렇게 배워 자신감이 생기면 창업에 도전해 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GYBM의 동문들은 연봉이 5만달러를 넘으면 연봉의 10%를 갹출하여 공동의 창업기금을 조성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현장학습을 통한 도전정신은 그가 평생 실천해온 그의 철학이자 신념이다.

지금 한국은 지난 30여년간의 눈부신 경제발전의 성취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하여야 할 시기에 놓여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녹치 않다. 경제성장율은 정체되어 있고, 청년들의 일자리는 부족하며, 사회를 통합하여 국민적 에너지를 모아 낼 수 있는 리더십은 흔들리고 있다. 우리 경제가 더 이상의 발전을 못하고 이대로 주저앉고 마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이 크다. 이러한 때에 김우중 회장의 외침은 울림이 크며, 그가 남긴 발자취는 우리에게 새로운 의욕을 불어 넣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 모두 그가 줄곧 외쳐온 한 마디,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새누리당 국회의원(인천 남구갑·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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