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개성공단 국제화, 시베리아 횡단철도 및 러시아 가스관 사업 등은 북한의 협조가 없으면 사업 추진 자체가 힘든 실정이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이 집권 1년을 앞두고 대북정책의 변화를 꾀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우리 정부와 미국ㆍ중국ㆍ러시아ㆍ일본 등 6자 회담 관련국 간 협상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부가 정상회담을 포함해 북한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비핵화를 천명하고 있어 북한이 핵 보유와 경제발전을 함께 추진하는 병진정책을 고수할 경우 정상회담은 공염불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경색된 대북경협ㆍ남북관계 풀리나=박 대통령은 꼬일 대로 꼬인 남북경협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북한의 태도변화, 나아가서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인식 변화가 절실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12~13일 방한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주요 의제가 되는 나진∼하산 시베리아 횡단철도, 가스관 사업 등은 북한의 협조가 필요하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철도와 가스관 사업은 박 대통령이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핵심 어젠다인데 5ㆍ24 조치를 해제하지 않으면 차질이 불가피하다”면서 “현실 제약 때문에 북한과의 접촉면을 넓히고 나아가서는 정상회담 발언까지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신뢰 프로세스 등 박 대통령의 정치ㆍ안보 공약도 북한이 협상의 장으로 나와야만 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미국ㆍ중국ㆍ러시아ㆍ동남아시아 등 집권 이후 네 차례의 해외 순방을 통해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DMZ 평화구상에 대해 각국 정상의 지지와 동의를 이끌어냈다. 프랑스ㆍ영국ㆍ벨기에ㆍ유럽연합 등 이번주 진행되는 서유럽 순방에서도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북한의 참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는 정부의 대북정책을 감안해서 강경 일변도로만은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박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답습해서는 남북관계 진전을 꾀하기 어려우며 되레 보수강경 이미지만 부각시킬 뿐이라고 우려를 표명한 것도 태도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속도 내는 6자 회담=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유도하기 위한 6자 회담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른바 ‘병진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고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북한 비핵화가 필수 전제조건이다.
우리측 6자회담 수석 대표인 조태용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3일 오전 미국으로 출국, 7일까지 현지에 체류하면서 글린 데이비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 등 국무부 당국자 및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 등을 만나 북핵 문제 전반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6일에는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 3자 협의도 계획돼 있다.
조 본부장은 출국 전 “북핵 대화는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기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대화가 돼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조 본부장의 방미는 10월28∼29일 열린 미중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 직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조 본부장은 미국 방문 이후 이달 중 중국을 찾아 중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도 회동할 예정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북한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은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며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고 남북관계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경협 등 당근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이 핵개발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면 기존 ‘강 대 강’대결 국면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