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스릴러를 표방하는 영화 '악의 연대기'를 설명하면서 주연 최창식 반장 역을 맡은 배우 손현주(50·사진)는 "거기다 '심리'라는 말을 붙였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정확한 해석이라고 생각됐다. 14일 개봉하는 '악의 연대기'는 경찰청 본청으로의 승진을 코앞에 두고 있는 잘 나가는 경찰 최창식이 우연한 사고에 휘말려 사람을 죽인 후 그 사건을 은폐하려 하면서 겪게 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지난해 개봉했던 영화 '끝까지 간다'와 소재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느낌은 전혀 다르다.
'끝까지 간다'가 자신의 과오를 숨기려는 경찰의 고군분투기를 그린다면 '악의 연대기'는 궁지에 빠진 인물의 감정선을 쫓아가는 것이 핵심.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사건이 들켜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거기다 자신을 노리는 진범에 대한 분노가 엿보이는가 하면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출세에 대한 욕망 등 복잡하고도 모순되는 수많은 감정들을 스크린에 오롯이 그려내는 것이야 말로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물론 '믿고 보는 배우' 손현주는 더할 나위 없었다.
"다른 작품들보다 좀 힘들게 작업했다는 느낌이에요. 한 번은 감독님께서 눈 클로즈업 장면을 찍을 텐데 움직이지는 말면서 분노, 불안, 혼란, 충격 뭐 이런 한 8개쯤 되는 감정을 한 번에 표현해 달라고 하시더라구요. 저도 모르게 '감독님이 한번 해보시지 그래요'라고 예민하게 굴기도 했죠"
1시간 40분이라는 시간 동안 내내 고통받는 캐릭터 최창식에 깊이 동화된 것도 배우를 힘겹게 만들었던 부분이다. 배우는 자신이 작품에 푹 빠져서 연기하고 그 감정을 현실까지 끌고 오는 타입이라고 설명했다.
손현주는 "나도 모르게 빠지는 것"이라며 "나중에 편집본을 보면 나도 모르는 표정을 내가 짓고 있는 순간을 발견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이번 영화에선 비밀이 생기고 그 비밀을 감추려는 역할을 하다 보니 촬영하는 도중에도 그 부담감이 마음을 짓눌렀고 외로웠다"고 덧붙였다.
주연을 맡은 영화나 드라마마다 소위 '대박'을 내고 있는 배우로서 좀 더 자신만만해도 좋을 법한데 그는 시종일관 겸손했다. 러브콜이 줄 잇고 있는 이유는 "제가 말을 잘 들어서 그렇다"고, 역할을 맡지 못해 아쉬운 작품이 없냐는 질문에는 "어디 배우가 나뿐이냐. 연기 잘하는 사람은 너무 많다"고 했다. 언젠가는 자신의 연기가 시작됐던 대학로에서 공연할 기회를 갖고 싶다면서도 그 방법은 "편안하고, 가볍고, 조심스럽길" 바란단다. "모든 일은 다 때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이 욕심 없는 배우는 마지막까지 다른 이들을 응원하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대학로에 진주같은 친구들이 진짜 많거든요. 하지만 많은 연기를 하기에는 그 통로가 약해서 아쉬워요. 기회가 될 때마다 그 친구들을 많이 추천하려고 하는데,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고. 이번 영화를 하면서는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했는데 열정있고 강단있으시더라구요. 이번을 계기로 더 좋은 작품 만드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