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4월7일] 오티스


뱃살의 주범, 현대 문명의 이기. 뭘까. 엘리베이터다. 거대 도시의 고층빌딩 숲도 이게 없으면 불가능했다. 9ㆍ11 테러 공격으로 붕괴된 무역센터 건물에는 255개의 엘리베이터가 사람을 실어 날랐다. 엘리베이터가 처음 등장한 것은 그리스 시대. 철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밧줄과 도르레를 이용해 엘리베이터를 처음 고안했다고 전해진다. 로마의 폭군 네로 황제도 3층짜리 궁전에서 노예의 인력으로 움직이는 승강기를 운행했다. 화려한 귀족문화를 연 ‘태양왕’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전의 3층짜리 건물에 간단한 기계식 엘리베이터를 달았다. 현대식 엘리베이터의 시발점은 엘리샤 오티스(Elisha Otis). 1811년 4월7일 태어난 그는 침대 회사에 다니며 설계를 배웠다. 오티스가 개발한 엘리베이터의 최대 장점은 안전. 케이블이 끊어져도 엘리베이터 박스를 톱니바퀴가 잡아주는 장치를 선보였다. 케이블이 끊어져 추락하는 엘리베이터의 장면이 영화 속에 종종 나오지만 오티스 이후 엘리베이터 추락은 상상일 뿐이다. 발명가였음에도 오티스는 가난 속에서 살았다. 해적판이 쏟아진 탓이다. 1853년 뉴욕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오티스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는 케이블이 끊어져도 정지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롤 선보이며 명망을 얻었지만 사업 성공을 확인하지 못한 채 1861년 눈을 감았다. 엘리베이터의 2005년 세계 수요는 연간 37만여대. 한국 업체들은 약 3억5,000만달러어치를 수출하고 있다. 1914년 조선호텔이 처음 운행한 엘리베이터의 지난해 국내 시장규모는 7,983대. 오티스가 개발한 엘리베이터는 시속 12㎞에 불과했지만 최신형은 그 열배가 넘게 작동한다. 시속 600㎞급의 초고속 엘리베이터 개발경쟁도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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