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특사 자격으로 워싱턴과 뉴욕을 방문한 정인용 전 부총리가 지난주말 뉴욕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한 경제 개혁조치는 최소한의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IMF 요구 이상의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외국인들에게 한국이 투자할 만한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외국인 자금이 들어오고 외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는 IMF를 넘어선 경제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국민들의 자존심을 감안하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면도 있지만 시시각각으로 외채 만기일에 쪼들리는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그의 말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80년대 중반 미국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는 살벌했다. 일제차에 밀려 「빅3」는 대량의 실업자를 쏟아냈고 캘리포니아의 은행, 하와이의 호텔들은 물론 뉴욕의 록펠러 센터마저 줄줄이 일본에 팔려 나갔다.
그러나 미국 기업들의 대대적인 다운사이징(인력감축)은 마침내 불황 극복의 원동력이 됐다. 내수시장에 안주했던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일제차와의 가격, 품질 경쟁에 나섰다. 1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과거에 팔았던 호텔과 은행, 록펠러 센터를 사들였고 내수시장의 일제차 점유율을 10%대로 줄였다. 만약 그때 미국이 외국에 부동산과 은행을 팔지 않고 국내에서 외국 상품과 경쟁하지 않았더라면 난국을 극복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우리도 이 시점에서 과감한 경제 개혁과 시장 개방이 필요하다. 그래서 부실한 재벌과 은행이 더 쓰러지고 대량의 실업자가 생기며 은행 몇개쯤 외국에 넘겨줄 각오를 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IMF 협상 준수를 재확인했지만 국민들 가슴 깊숙한 곳에는 IMF에 대한 못마땅함이 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미국처럼 다시 일어선다는 자부심을 갖고 IMF 조건보다 훨씬 전진적인 개혁을 받아들이며 동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