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벡톨샤임과 매큘러가 없는 나라


두어 달 전 "삼성전자 사장에게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겠느냐"는 뜬금없는 전화를 받았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전화를 건 A씨는 검색과 관련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어느 벤처기업 대표였다. 삼성전자 고위 임원이 들으면 눈이 번쩍 뜨일 만한 기술이지만 A씨로서는 직접 그들을 만날 기회가 없으니 대신 이야기를 전해줄 수 없겠냐는 게 A씨의 부탁이었다. 그는 이미 삼성전자에 특허 매도의향서를 제출해봤지만 이야기가 성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A씨의 부탁을 거절하기는 했지만, 간절한 그의 목소리는 한동안 마음에 걸렸다. 사실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용될 만한 기술인데 기자를 포함한 여럿의 무지로 인해 사장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 경쟁력이 있는 재능과 기술이라면 누구의 도움 없이도 어떻게든 살아남기 마련이다. 구글이 그랬고, 애플이 그랬다. 그 재능과 기술에서 기막히게 가능성을 찾아내는 '누군가'덕분이다. 예를 들어 구글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에게는 앤디 벡톨샤임이나 람 슈리람이라는 '누군가'가 있었다. 당시 야후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제리 양은 구글의 검색기술에 감탄하면서도 사업성을 이유로 기술 매입을 거절했지만, 선마이크로시스템 창업자인 앤디 벡톨샤임과 벤처 캐피탈리스트인 람 슈리람은 구글의 미래를 직감하고 첫번째, 두 번째 투자자로 나섰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도 무턱대고 투자자들을 찾았다 숱하게 거절당했지만 마이크 매큘러는 달랐다. 역시 벤처 투자자인 그는 한국에서라면 '또라이'라고 불렸을 법한 젊은 잡스에게 선뜻 사업자금을 댔다. 문제는 우리나라에 벡톨샤임이나 매큘러 같은 혜안이 있느냐다. A씨가 설령 굉장한 특허를 갖고 있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그 가능성을 봐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제리 양으로 가득한 국내 IT 대기업들도 그렇고 해당 업체의 아이디어보다도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기준으로 금고를 여는 사실상 고리대금업자와 유사한 벤처투자자들에게서는 희망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 미국에 있는 동료들과 합류할까 생각 중이라는 A씨의 말이 차라리 다행스럽게 들렸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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