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 정치 욕망이 낳은 르네상스 예술

■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 성제환 지음, 문학동네 펴냄

정치홍보물로 그려진 '비너스의 탄생' 교황 입지 강화 위한 '최후의 심판' …

예술가 후원으로 지배이념 만들어내 르네상스 시대 뒷얘기 흥미롭게 전개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이다. 가운데 비너스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요정 클로리스가, 오른쪽에는 꽃의 여신 플로라가 있다. /사진제공=문학동네

유럽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된 곳이 왜 이탈리아였을까. 특히 피렌체였을까. 피렌체의 부호들이 보티첼리나 미켈란젤로 같은 천재 예술가들을 아낌없이 후원했기 때문이라는 답이 나올 수 있다. 그러면 피렌체의 부호들은 왜 이런 예술가들을 지원했을까. 단순히 '부의 사회환원' 차원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은 지중해 무역의 발달로 거대한 부를 쌓은 상인 부호들의 돈이 르네상스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국가내 지위를 구축하고 공고히 하기 위해 예술가들을 동원했다. 성직자들과 인문학자, 화가, 건축가들도 돈도 벌고 스스로의 입지를 세우기 위해 여기에 동참한다.

피렌체의 예술을 후원한 부호로는 메디치 가문이 첫손에 꼽힌다. 메디치 가문의 시조는 코시모 데 메디치인데 그의 선조들은 처음에는 인근 농촌에서 이주해온 '신참'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코시모의 아버지 조반니 대에 부동산에 투자해 갑부가 된다. 이후 중계무역과 금융업 등에도 진출한다. 이를 통해 아들 코시모는 당대 최고의 부자로 인식된다. 코시모와 그의 후손들은 권력과 평판을 기르는 데 집중한다.


이를 위해 성당 건축과 그림을 지원했다. 그리고 코시모는 예술가들에게 자신과 가문을 드러내달라고 당부한다.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후원하면서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시민들에게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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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자. 그림 '비너스의 탄생(1484~1486)'은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이 작품에는 조개껍데기를 타고 해변에 도착한 비너스와 이를 환영하는 여신 플로라가 등장한다. 신화의 한 장면을 아름답게 묘사한 것으로만 여겨진 작품이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일종의 '정치 홍보물'로 그려졌다.

그림은 비너스가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일으킨 바람에 떠밀려 플로라가 환영하는 장소로 이동하는 모습을 담았다.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서풍이 불면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 화가는 로마제국 황금시대를 잉태한 비너스를 등장시켜 피렌체에도 황금시대가 펼쳐질 희망을 그려낸 것이다. 보티첼리는 비너스가 피렌체로 향하고 있다는 점도 암시했다. '꽃의 도시' 피렌체의 상징인 꽃의 여신 플로라를 그려 넣은 것이다.

이 황금시대의 주인공은 메디치 가문이었고 그 중에서도 핵심은 코시모의 손자로 메디치 가문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위대한' 로렌초였다. 예술가들은 로렌초를 우상화하고 홍보하는데 자신들의 재능을 발휘했다.

정치홍보를 위해 예술가들을 이용한 것은 상인들과 피렌체 내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바티칸 시스타나 성당의 벽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1534~1541)'이 대표적이다. 당시 교황 클레멘스7세는 피렌체인인 미켈란젤로에게 기독교를 상징하는 최고의 그림을 그려달라고 주문한다. 스페인과 독일 무장세력에 의해 로마와 교황청이 약탈되고 파괴된 '로마약탈'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있었고 또 루터파 등 개신교의 종교개혁 요구가 불같이 일어나면서 교회 내부의 정풍운동이 필요할 때였다. 이에 교황은 기독교 순교자들의 형상을 그린 작품을 통해 교황청을 기독교계의 중심으로 다시 세우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책은 메디치 가문을 비롯해 바르디 가문, 스트로치 가문, 브란카치 가문 등 르네상스 시대의 대부호들이 예술가들을 후원함으로써 자신들의 지배이념을 만들어내고 르네상스 시대의 창조적 공간을 창출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그려낸다. 그동안 예술사의 전통적 시각을 넘어 경제와 정치를 접목한 색다른 시도로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 분석을 시도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1만9,800원.


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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