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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인재는 아니더라도 역량 펼칠 기회 얻을수있어
지난 15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문구ㆍ사무용품업체 모나미 본사. 올해 52주년을 맞는 모나미 역사에 대한 동영상을 보며 김민정(성신여대 식품영양학과 4년)씨, 유민지(덕성여대 독어독문학과 3년), 성윤희(이화여대 대학원 법학과 1년) 씨 등 대학생 탐방단의 손이 바빠졌다.
꼼꼼하게 메모를 하던 김 씨는 동영상에서 국내 최초 볼펜인 '153볼펜'이 나오자 지금 자신이 쓰던 볼펜을 들어 보이며 반가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던 학생들은 연구소로 자리를 옮기자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공부를 할 때 늘 접하는 친숙한 제품을 만들다 보니 평소 궁금한 점이 많았던 것이다.
"왜 볼펜은 떨어지면 잘 나오지 않나요"라는 탐방단의 질문에 연구소를 총괄하는 강성조 상무는 전자현미경을 보며 알기 쉽게 설명을 해줬다. 볼펜 촉(tip)의 구조를 보면 두께가 0.02㎜정도에 불과한 얇은 철판이 지름 0.5㎜ 정도인 작은 공(ball)을 잡고 있는 구조라는 것. 필기구는 '정밀 부품'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떨어뜨려 충격을 가하면 이 구조가 망가진다는 설명이다.
송하경 대표와 함께 연구소를 둘러본 탐방단은 곧 접견실로 자리를 옮겨 환담을 나눴다. "오랜 시간 신뢰할 수 있는 기업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는 성 씨의 질문에 송 대표는 "153볼펜이 나온 1961년 버스, 신문, 볼펜요금이 똑같이 300원이었지만 버스(카드 기본요금 1,050원), 신문(부당 800원) 요금이 오르는 동안 153볼펜의 가격은 여전히 같다"고 답했다. 필요한 기능은 다 갖추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합리적인 사무용품'이라는 이미지가 모나미가 지닌 친근감, 신뢰감의 원천이라는 설명이다.
그러자 평소 마케팅, 영업 직무에 관심이 많았던 유 씨는 모나미의 마케팅에 대해 의견을 냈다. 유 씨는 "모나미는 대학생 마케팅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은데 많은 수입브랜드들이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그냥 물이 아닌 '비타민 워터'를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싸지만 수입 필기구를 쓴다"고 대학생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단순히 '합리적인 제품'이 아니라 '갖고 싶은 프리미엄 제품'을 내놓기 위한 전략이 아쉽다는 지적이다.
이런 대화내용에 송 대표는 학생들의 의견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PC, 아이패드, 볼펜 등 문구류를 넘어선 탐방단의 '필기도구'를 꼼꼼히 살피기도 했다.
송 대표가 탐방단의 최대 관심사가 뭐냐며 질문을 하자 자연스럽게 대화는 '취업'으로 이어졌다. 송 대표는 경영자의 측면에서 탐방단에 다소 냉정하지만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그는 "회사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누가 일을 하든지 일정한 결과물이 반복적으로 나올 수 있는 프로세스(process)를 만들어 둔다"며 "회사에서 필요한 사람은 새로운 프로세스를 만드는 능력있는 일부 사람과 프로세스 안에서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대개 직원들은 사내에서 전자의 역할을 맡길 원한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이 가진 역량이 어디까지인지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인은 뛰어난 인재지만 세계적인 인재들이 모여드는 대기업에 가면 프로세스를 만드는 일을 하기보다는 프로세스대로 따라가는 직원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는 것.
모나미같은 중견기업에 와야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적 인재가 아닌 사람이 글로벌 대기업에 가면 중간관리자급에서 퇴직해야 한다"며 "하지만 중견기업에 오면 좀더 진취적인 일을 할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음에도 송 대표는 학생들에게 일일이 '어떤 업무를 하고 싶나'며 말을 걸고 그가 직접 키우는 개를 소개하는 등 친근한 면모를 보여줬다. 탐방을 마친 뒤 소감을 묻자 김 씨는 밝은 목소리로 "기회가 된다면 꼭 오고 싶은 회사"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