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의원 선거가 2일 공시되면서 일본 정치권이 오는 14일 총선거까지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경기둔화와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 등 국내외 악재가 겹친 가운데 아베노믹스가 최대 쟁점인 이번 선거에서 아베 신조 정권이 무소불위의 권력 기반을 유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일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총 475명의 중의원을 뽑는 총선 공시 후 오후2시 현재까지 자민당 등 9개 정당에서 1,189명이 후보등록을 마쳤다. 갑작스러운 중의원 해산으로 야당 측이 후보자를 충분히 구하지 못해 입후보자 수가 적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전국 295개 소선거구에서 최다 득표자 1명씩 295명, 전국을 11개 권역으로 나눈 광역선거구에서 비례대표 180명이 중의원으로 선출된다.
아베 총리가 중의원 해산 당시 표명한 '마지노선'은 연립여당 과반수 의석(238석) 획득이다. 아베 총리는 앞서 중의원 해산을 선언하며 의석 수가 과반을 넘지 못할 경우 총리직을 사임하겠다는 '배수의 진'을 쳤다. 다만 당내에서 과반을 목표로 삼는 목소리는 없다. 앞서 총 480석의 3분의2를 넘는 326석을 차지한 여당 입장에서는 최근의 지지율 하락을 감안해도 절대안전 다수인 266석(17개 상임위원장 및 위원 과반 확보)은 얻어야 그나마 선거에서 이겼다고 할 수 있다. 의회 해산 당시 60석을 차지했던 민주당은 의석 수를 100석으로 늘리고 여당의 과반 획득을 저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 2년간의 '아베 정치'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띠는 이번 총선의 최대 쟁점은 '아베노믹스'의 성패다. 여당은 아베노믹스의 성과를 강조하며 정책지속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반면 최대 야당인 민주당은 아베 정권 들어 확대된 양극화와 고물가 등 부작용을 전면에 내세우며 경제정책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후쿠시마현 소마시에서 공식 선거운동 일성으로 "이 선거는 아베노믹스에 대한 (찬반을 묻는) 선거"라며 "15년간 겪었던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반드시 이기겠다"고 강조했다. 자민당은 정권 출범 후 100만명의 고용 창출과 유효구인배율(구직자 대비 구인 수 비율) 제고 등의 성과를 강조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경기부진을 이유로 2차 소비세율 인상시기를 당초 내년 10월에서 2017년 4월로 연기하며 중의원 해산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서 선거운동의 막을 연 민주당의 가이에다 반리 총재는 "총리는 경기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이는 한 줌도 안 되는 일부 사람들에게 국한된다"며 아베노믹스가 초래한 양극화를 부각시켰다. 민주당은 소비세 증세시점을 정하지 않고 연기할 것과 중산층에게 초점을 맞춘 경제정책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발표되는 일본 경제지표와 대외여건 등도 아베 총리에게 다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날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10월 근로통계조사 결과 근로자의 현금급여 총액 평균은 전년동월비 0.5% 늘어난 26만7,935엔(약 250만원)을 기록했지만 물가를 고려한 실질 기준으로는 오히려 2.8% 감소해 1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이어갔다. 특히 1일 무디스가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Aa3'에서 'A1'으로 강등한 것은 아베노믹스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경고'로 받아들여진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하루 전에 신용등급이 강등된 것은 경제를 쟁점화하려는 아베 총리에게 타격"이라고 지적했다. 크레디아그리콜의 오가와 가즈히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무디스의 발표는 일본 유권자들에게 일본 재정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고 평가했다. 신용등급 강등이 금융시장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아베노믹스가 지속되는 데 대한 불안감을 키우는 데는 일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번 총선의 초점이 경제정책에만 맞춰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아베 정권이 강행하는 집단자위권 행사 허용과 외교안보 정책, 원자력발전소 재가동 문제 등 2년간의 '아베 정치' 전반을 쟁점화하고 있다. 민주당은 집단자위권 행사를 용인한 각의결정 철회 등을 주장하면서 "아베 정권의 위험성을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원전 재가동 여부에 대해서도 각 당의 입장이 엇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