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대학과 연구기관은 어떻게 결합하는가

독일 카를스루에대 총장과 카를스루에연구소 이사장이 지난 2005년 2월 은밀하게 만났다. 양 기관 간 통합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1825년에 설립된 카를스루에대는 2006년 독일 정부로부터 우수 대학으로 선정된 명문대지만 국제적 명성은 크게 떨어진다. 1956년 핵 관련 연구소로 출발한 카를스루에연구소는 독일 4대 연구기관 중 하나인 헬름홀츠연구소에 속해 있으나 역시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카를스루에대와 카를스루에연구소는 2009년 10월 통합, 카를스루에공대(KIT)로 다시 태어났다. 통합 문제를 논의한 지 4년 반 만의 일이었다. 통합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상위 기관들의 반대였다. 대학은 주 정부 산하이고 연구소는 연방 정부 소속이다. 양 기관이 국제자문위원회를 구성, 통합의 필요성과 장점을 강조하며 끈질기게 설득하자 연방 정부와 주 정부도 결국 통합 찬성으로 돌아섰다. 볼커 자일레 KIT 과학담당 최고경영자는 통합 효과에 대해 "수주하는 프로젝트 규모가 커졌고 대학생들도 장기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대학과 연구기관 간 통합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을 합치고, 한국해양연구원과 한국해양대학교를 통합해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을 설립한다는 방안이다. 독일과 달리 국내의 대학ㆍ연구기관들은 통합에 대해 영 마뜩잖은 표정이다. 연구원 노조와 대학 교수들은 정부가 해당 기관의 특성에 대한 고려와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도 없이 통합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독일 KIT가 '상향식(bottom-up) 결합'이었다면 우리는 철저히 '하향식(top-down) 통합'이다. 일방적인 통합 추진 방식도 문제지만 일정도 속도전을 방불케 한다. 이런 식의 통합 과정이라면 설령 두 기관이 합친다고 하더라도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자일레 박사에게 한국 상황을 제시하며 의견을 구했다. 그는 "한국 사정이 어떤지 모르지만 핵심은 통합 기관 구성원 간의 신뢰와 합의"라는 모범답안(?)을 내놨다. 뻔한 답이지만 그게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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