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청와대 「실명제 보완」 수위조절 시동

◎“당·정추진 대체입법 근간훼손” 지적따라/공평과세 등 골격살리기 “내용조정” 밝혀신한국당 주도로 추진하고 있는 금융실명제 대체입법 방향이 실명제의 근간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비등함에 따라 청와대가 수위 조절에 나서기로 했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4일 『현재 정부와 신한국당이 마련중인 금융실명제 보완을 위한 대체입법 내용 중에는 조정할 필요가 있는 조항들이 있다』고 말하고 『금명간 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가 신한국당의 실명제 보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진행상황이 김영삼 대통령이 내린 지침과 거리가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실명제 보완문제는 강경식 부총리 겸 재경원장관이 지난 3월초 취임하면서 처음 꺼내 ▲국민불편을 해소하고 지하경제의 양성화 방향으로 현행 긴급명령체제의 금융실명제를 대체입법하며 ▲금융실명제의 사정적인 측면은 별도의 자금세탁법(가칭) 입법에 반영한다는 원칙아래 추진되어 왔다. 김대통령은 실명제 보완이 개혁작업의 포기라는 지적이 일자 지난 3월17일 강부총리에게 『기본 골격이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공개 지시한 바 있다. 지난달 29일 신한국당 주최로 열린 공청회에서 제시된 대체입법 방안의 골자는 ▲현금 입출금시 실명확인 의무의 대폭 완화 ▲중소기업 등에 대한 출자시 자금출처조사 면제 및 국세청 통보면제 ▲최고세율 40%로 분리과세를 선택했을 때 금융소득자료의 국세청 통보면제 등이다. 얼핏보면 국민불편 해소와 지하자금의 산업자금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로 여겨진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실명제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요소들이 풍부히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기본골격을 손대지 말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무색해진 것이다. 우선 현금입출금시 실명확인의무 면제는 뇌물과 비정상적인 정치자금 등 검은 돈의 흐름을 차단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여당은 1천만원 이하의 현금입출금에 대해 실명확인을 면제해주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한 정책관계자는 『1천만원이 면제한도가 되면 실명확인의무는 완전히 사문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1억원을 보낸다 해도 열번에 나누어 송금하기만 하면 간단히 끝난다는 것. 분리과세의 문제점은 더욱 크다. 현실적으로 합의차명이 가능한 상태에서 분리과세와 국세청 통보면제까지 허용한다면 금융소득에 대한 세금징수액은 늘어날 수 있지만 변칙상속과 증여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 특히 합의차명된 계좌로 실명확인을 면제받고 송금한 뒤 분리과세를 택하는 방법을 이용하면 과세당국의 눈을 피해 탈법적인 증여·상속이 이루어질 토양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는 지적이다. 실명제의 기본골격에 해당하는 공평과세와 실명거래 원칙이 모두 허물어질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다. 따라서 신한국당에서도 분리과세를 택한 금융소득 자료를 일단 국세청에 통보는 하되 금융실명제 대체입법에 상속세 등의 탈세나 체납세액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 자금출처를 조사케 한다는 조항을 구체화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지하자금의 양성화 유인책은 그 실효성이 의문시 되고 있다. 사정적 측면을 자금세탁방지법에 담자고 했지만 이 법안을 마련하고 있는 법무부는 거액현금 입출금시 국세청통보 의무조항을 법안에서 제외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합의차명에 대한 처벌규정도 차명계좌가 불법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때에 한하도록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한국당의 대체입법안과 법무부의 자금세탁방지법안이 현재의 시안대로 통과된다면 문민정부의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히는 금융실명제는 말 그대로 종이호랑이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셈이다. 청와대측이 문제를 제기하기로 한 만큼 앞으로 있을 정책조정 결과가 주목된다.<우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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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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