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월가, '엎친' 그리스 불안에 '덮친' 주문실수… 순식간에 아수라장

[3차 글로벌 금융위기 오나] 다우지수 5분간 10% 가까이 폭락<br>'공포지수' 눈깜짝할새 63% 폭등… 외환·상품시장 덩달아 요동, 나스닥선 일부종목 거래차단<br>WSJ "매매 시스템 오류" 지적에… 정치권 "개혁법안서 규제를" 주장도


이런 패닉이 또 있을까. 6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지수를 비롯한 주요 지수는 단 5분 만에 10%에 가까운 폭락 장세를 보였다. 월가 사상 장중 최대 폭락으로 기록된 이날 패닉에 대해 월가에서는 그 원인을 놓고 해석이 분분했다. 단순 주문 실수에서부터 전산시스템 오작동, 투기세력의 공매도, 헤지펀드의 마진콜(차입금에 대한 추가담보요구)에 따른 무차별적인 투매 등등이 모두 지목됐다. 좀더 멀리는 월가 시스템의 오류라는 분석도 나왔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즉각적인 조사에 착수했지만 이날 명쾌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패닉을 초래한 직접적인 계기는 여러 가지일 수 있으나 시장의 기저에는 그리스 외채위기의 확산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이른바 갈수록 파장이 커지는 '잔물결효과(ripple effect)'다. "그리스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포르투갈과 스페인ㆍ이탈리아 등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시장을 짓눌렸다. 6일(현지시간) 뉴욕증시는 유럽 주요 증시가 0.8~2%가량 하락했음에도 보합세로 출발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하락세로 방향을 잡더니 정오를 넘기면서 갑자기 낙폭이 커졌다. 이 시간 CNN과 CNBC 등 미국의 주요 방송들은 그리스 의회가 긴축 안을 승인했다는 소식과 함께 이에 항의하는 격렬한 시위 장면을 계속 내보냈다. 증시에서의 불안감은 서서히 증폭되기 시작했다. 이날 금리를 동결한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그리스 국채 매입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며 추가 지원 가능성을 차단한 소식도 타오르는 불안감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오후2시쯤 다우지수의 낙폭이 4%가량 확대되더니 2시42분부터 뉴욕 증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매수 주문은 완전 실종되고 투매 양상이 장을 지배했다. 5분간 다우지수는 무려 997.2포인트(9.2%) 폭락, 시장은 그야 말로 패닉에 빠졌다. 증시의 두려움을 지수화한 일명 공포지수로 불리는 VIX지수는 순식간에 63% 폭등했고 유로화는 달러 대비 8% 추락했으며 금값은 온스당 1,200달러로 폭등했다. 주가폭락에 외환ㆍ상품시장이 덩달아 요동을 친 것은 주식시장 움직임에 외환ㆍ상품거래를 자동 연동시키는 컴퓨터 거래망이 작동한 탓이다. 3시 이후 다우지수가 1만포인트선을 다시 회복하자 지난 1987년 10월19일 '블랙먼데이(22% 하락)' 악몽을 떠올리던 월가 트레이더들은 가슴을 쓸어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2시40분부터 3시까지 20분간 변동폭 60% 이상의 종목에 대해서는 아예 거래를 차단하기도 했다. 라이언 벨스키 오펜하이머자산운용 수석 전략가는 "마치 1997~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때와 같은 느낌"이라며 혀를 내둘렸다. 5분간의 패닉을 몰고 온 이유는 무엇일까. 직접적 계기는 거래주문 실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월가에서는 씨티그룹의 거래주문 실수라는 소문이 돌았다. CNBC는 "씨티그룹 쪽으로 보이는 한 트레이더가 P&G 주식 매도 주문을 내면서 1,600만주(16milllion)를 160억주(16billion)로 냈다"고 보도했다. 5분간 P&G의 주가는 37% 자유 추락했다. 그러나 씨티그룹은 "조사를 진행 중이지만 거래실수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P&G 주가 폭락에 따른 다우지수 하락분은 200포인트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자체 조사에 들어갔으나 거래시스템의 오작동은 없었다고 발표하면서 "다수의 주문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고 발표했다. 오후 들어 낙폭을 키우자 월가 트레이더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주식을 팔아치우려던 과정에서 주문 실수가 발생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만큼 그리스 외채를 바라보는 월가의 시각이 심각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월가의 천재들이 고안한 고주파거래 시스템(high-frequency system)으로 보인다. 고성능 컴퓨터를 이용한 이 시스템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0.0001초 만에 속사포처럼 거래할 수 있는 초단타 프로그램 매매시스템. 이 시스템은 리스크를 줄일 수 있으나 시장에 공포가 커지면 이를 활용하는 투자기관들은 죄다 매도라는 같은 방향으로 쏠리는 결정적인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자신은 남보다 빨리 매도해 손실을 줄일 수 있으나 결국에는 전체가 공멸한다는 것이다. 2008년 3월 베어스턴스의 붕괴, 9월의 리먼브러더스 몰락 즈음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 지난해 50%에 이르던 고주파 거래는 현재 75%에 이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고주파거래 시스템이 주가하락 속도를 가속화시켰다"고 지적했고 뉴욕타임스(NYT)도 "고주파거래의 오류로 투자자들은 비싼 대가를 지불했다"고 꼬집었다. 이에 따 SEC와 정치권은 이 시스템에 대한 규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테드 쿠퍼만 민주당 상원의원은 이날 "하이프리퀀시 시스템이 시장의 대혼란을 부추긴다"며 "금융개혁 법안에서 이를 규제하는 방안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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