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신선식품과 생필품 가격이 고삐 풀린 채 급등하고 있다. 이에 더해 정부의 물가안정정책에 떠밀려 올해 초부터 억지로 생필품 가격을 할인하거나 동결했던 대형마트들이 가격을 이전 수준으로 환원하거나 더 올릴 예정이어서 서민들의 물가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름 물가에 비상등이 켜진 셈이다.
통계청이 2일 내놓은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전체 지표상으로는 2.2% 올라가는 데 그쳐 안정세를 이어갔지만 정작 식탁물가와 직결된 농산물 값은 가뭄 여파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농산물 값은 전년 동월 대비 14.4%나 올랐는데 고춧가루(72.5%), 파(84.7%), 배추(65.9%), 감자(55.6%) 등 식탁에 없어선 안 될 품목들의 가격이 급등세다. 신선식품지수만 따로 놓고 봐도 11.0%나 올랐다.
올 상반기 동안 4개월이나 소비자물가가 2%대에 머물면서 안정세를 보였지만 7월부터 생필품을 중심으로 물가가 다시 꿈틀거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장에서의 물가 오름세도 눈에 띌 정도로 가파르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쪽파(1㎏·상품) 도매가격은 5,400원으로 3,660원이던 일주일 전보다 47.5%나 뛰었다. 한달 전 가격(3,155원)보다는 71.2%나 급등했다. 배추(1㎏)는 890원으로 522원이던 일주일 전보다 70.5%, 478원이던 1개월 전보다 86.2%나 크게 올랐다. 청상추(4㎏)도 1만2,800원으로 한달 전(7,950원)보다 61% 인상됐다.
무(1㎏)는 900원으로 한달 전의 548원보다 64.2% 값이 뛰었으며 대파(1㎏·상품)도 2,380원으로 한달 전(2,000원)에 비해 19% 올랐다.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오르는 가운데 대형마트마저 채소뿐 아니라 가공식품ㆍ생활용품 가격도 인상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롯데마트는 올 3~6월까지 3개월 동안 최고 5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던 생필품 50종의 가격을 지난 1일부로 원래대로 되돌렸다. 이에 따라 지난 3개월 동안 2,220원이던 삼양의 수타면(5입)은 이달부터 25.2% 인상된 2,780원에 판매된다. 3,750원이던 애경의 '2080 청은차 치약(130gx3개)'은 100% 올라 7,500원이 됐다. 35% 할인 판매했던 '롯데 베이컨 기획세트'는 5,200원에서 8,000원으로 오른 가격에 판매된다.
이마트도 같은 기간 가격을 동결했던 롯데칠성음료의 '칠성사이다', 남양유업의 '드빈치 치즈' 등 2개 품목의 가격을 인상하기로 했다.
이마트가 유통혁명의 일환에서 파격적인 가격으로 판매했던 한우 1등급 등심 가격도 2~6월까지는 100g당 4,900원을 유지했지만 이달부터 5,900원으로 20.4%나 올랐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물가안정을 위해 한시적으로 가격을 낮추거나 동결시켰던 품목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일 뿐 가격인상이 아니다"라면서도 "생필품 생산업체에서 더 이상은 (가격인하 부담을) 견디지 못하겠다고 요청해 가격을 환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 눈치를 보며 가격 인상을 주저하고 있는 식품업체도 경영상 한계점에 도달해 조만간 주요 상품 값 인상을 결정할 것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한 식품업계의 관계자는 "국제 시장에서 원재료 가격이 급등했는데도 판매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면서 "올 초부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고 더는 버틸 수 없어 이르면 이번주에 가격 변동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선식품과 생필품에 이어 기름값도 최근 들어 안정된 추세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지난해와 비교해서는 높은 수준이다.
6월의 경우 휘발유와 경유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각각 5.9%, 5.5% 올랐다. 도시가스와 지역난방비도 각각 4.9%, 19.5% 상승했다. 유럽연합(EU)의 이란산 원유 금수조치를 포함한 대 이란 추가 제재가 1일 발효되면서 국제유가 상승 우려도 여전히 남아 있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유럽 재정위기와 글로벌 경기둔화로 앞으로도 수요 측면의 물가 압력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가뭄과 장마 여파로 농산물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고 소맥 등 국제 원자재 가격 불안정성이 높아 물가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통계청은 6월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2.2% 상승, 3월 2%대로 떨어진 후 넉 달째 2%대에 머물렀다고 밝혔다. 2009년 10월 2.0%를 기록한 후 2년 8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의 무상보육 실시에 따른 보육비 인하 효과와 지난해 물가가 높았던 데 따른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물가는 여전히 서민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수준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나마 6월 소비자물가를 안정시킨 주요 원인은 공공ㆍ개인 서비스 요금이다. 공공 서비스가 전년 동월 대비 0.8%, 개인 서비스가 0.5% 올랐다. 이들 서비스 요금에는 이동전화료, 보육시설 이용료, 학교 급식비, 외식비 등이 다양하게 포함돼 있는데 정부의 무상보육 정책과 내수 위축에 따른 서비스 요금 하락 등이 큰 영향을 끼쳤다.
기저효과도 물가상승률 부담을 낮췄다. 지난해 6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4.2%를 찍으며 4%대로 치솟았다. 이후 석 달 연속 4%대 고공행진을 이어갔는데 이 같은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통계상 물가는 당분간 안정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