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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3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한달 내내 '호떡집에 불 난 것'처럼 어수선했다. 유럽 왕조들의 숙적인 나폴레옹이 유배지인 지중해의 고도 엘바섬에서 2월 26일 탈출했고 3월 20일에는 파리에 입성했다는 소식이 잇따라 들어왔기 때문이다.
빈에서는 1814년 9월부터 프랑스 대혁명 및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사상 최대의 국제회의가 열리고 있는 중이었다. 유럽 주요국가들의 대표가 모두 모인 자리였다. 하지만 몇몇 강대국들만이 뒷거래에 열중하고 있을 뿐 전체적인 진척은 없었다. 왕족이나귀족 출신 각국 대표들이 향연과 무도회에만 열중해 '회의는 춤춘다. 그러나 회의는 진행되지 않는다'는 비난이 일었을 정도다.
이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 것은 나폴레옹이 다시 프랑스의 권좌에 올랐다는 충격적 사실이었다. 빈에 모인 대표들은 나폴레옹의 군대에 대항한 다국적군을 재소집하는 것과 함께 회의의 진행속도를 높였다. 나중에 '빈 체제'라고 불리게 되는 합의가 나온 것은 6월 9일. 핵심은 유럽을 프랑스대혁명 이전으로 복귀시키는 것이지만, 다시는 혁명이나 나폴레옹 같은 사건이 기존 체제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강대국간 세력균형이라는 원칙이 확정됐다. 이어 6월 18일 프랑스군이 영국의 웰링턴이 이끄는 영국ㆍ프로이센 연합군에 패하고 완전히 나폴레옹이 퇴위하면서 이른바 '빈 체제'는 공식적으로 안착된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인 폴 존슨은 '근대의 탄생(원제:The Birth of the Modern)'에서 이 해인 1815년부터 '근대'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근대를 구성하는 요소는 1815~1830년에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폴 존슨이 근대의 시작을 19세기 초로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 시기는 '대혁명과 전쟁'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았다. 정치와 사회가 안정되면서 이에 동반한 수많은 변화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유럽은 20년 가까운 나폴레옹 전쟁을 겪으면서 변화보다는 폭력 없는 세상을 원했다. 그 때문에 1815년 프랑스를 비롯한 각국의 민중들은 왕정복고라는 '반동'도 기꺼이 수용했다. 기본적으로 1815년 이후의 시대정신은 변화가 아닌 안정이었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변화를 위한 욕구는 막을 수 없었다. 구체제가 돌아오더라도 그것은 1789년(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된 해)로 돌아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변화가 불가피했다. 그동안 변화를 억압했던 지배층들도 양보해야 했다. 한번 권좌에서 물러났던 나폴레옹이 이른바 '백일천하' 동안 부활했었다는 사실은 구체제 세력에게 머리를 식힐 여유를 줬다. 구체제가 그토록 증오했던 대혁명이지만 지나친 복수는 새로운 나폴레옹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민중에게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드디어 민중이 역사의 전면에 나섰다.
근대는 이런 바탕 위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존슨의 해석이다. 봉건주의 타도와 부르주아 민주주의 수립이라는 대의를 가진 프랑스 대혁명이 근대의 시작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파괴적인 '나폴레옹 전쟁'은 근대의 실질적인 진행을 방해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야 영국과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그리고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1815년 이후부터 봇물처럼 터져 나온 산업과 과학, 문화의 혁명적 변화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시대적 상황에서 꽃피게 됐고 그 변화들이 사람들의 신념, 열정, 가치, 편견 및 사고방식을 '근대적으로'변화시켰다는 것이다. 근대적 금융시스템이 등장한 것도 이때다. 유대인으로 나폴레옹 전쟁 기간에 큰 돈을 번 로스차일드 형제들이 1815년부터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 각국에 금융 네트워크 구축에 나섰다. 특히 미국은 그 시스템을 재빨리 모방하면서 강대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으로 삼았다.
저자는 근대적인 변화로 미국의 부상을 첫 장에서 소개한다. 유럽에서 나폴레옹 전쟁이 진행 중일 때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미국은 영국과 교전 중이었다. 하지만 유럽 전쟁의 종결은 영국의 전쟁 의지에도 영향을 미쳐 미국과의 전쟁도 끝내자는 의견이 득세했다. 결국 양국이 휴전조약을 맺고 이후 지속적인 평화관계의 토대를 쌓아나갔다. 이로 인해 미국은 유럽의 영향권에서 탈피, 유럽식의 '타협'대신 '도덕적 정당성'이라는 명분 아래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도입하면서 점차 강대국으로 변모해갔다.
변화는 모든 분야에서 이뤄졌다며 폴 존슨은 조목조목 짚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통신과 교통의 눈부신 발달이다. 우편제도 정비와 도로 개량, 증기선 발달에 따른 항해시간 단축 등이 급속도로 이뤄졌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는 대륙을 넘나드는 대량의 인구이동을 통해 근대의 본격적인 출현에 크게 기여했다.
밝은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 전쟁을 끝낸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로 몰려갔고 이들에 밀려 원주민들은 소멸했다. 전쟁과 함께 유럽에서 건너온 온갖 질병도 원주민의 말살에 일조했다. 노예제도도 확산됐다. 미국에서는 방적기 개발로 면직물 생산성이 높아졌고 원료를 조달하기 위한 목화산업이 발달하면서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끌어왔다.
근대가 탄생했던 15년간은 '모든 게 처음이었던 시대'였고 '역사상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특별한 시대'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폭군과 천재, 광인들이 뒤엉켜 근대를 시작했던 불 같은 시대로서 그 변화가 축복인지 재앙인지조차 불분명한 시대였다.
여기서 저자는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그림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인용한다. 1818년 그려진 이 그림에서 한 여행자가 프록코트를 입고 산의 봉우리 사이에서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모습을 바위 위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다.
"여행자는 인간정신의 상징이다. 프리드리히는 그림과 함께 이렇게 말했다. 판단은 시간이 내려줄 것이다. 과연 찬란한 나비가 탄생할 것인지, 아니면 구더기가 나올 것인지."
저자는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2014년 현재가 역시 격변기라고 말한다. 다시 우리는 '모든 것이 처음인 시대'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중국의 부상, 팽창하는 러시아 민족주의 등 등. 이 책을 읽고 현재의 변화에 대한 의미를 깨닫고 대응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저자가 번역판으로 2권, 1,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 속에 '역사적인 사실'들만 나열한 것은 아니다. 당시 사람들의 편지ㆍ일기ㆍ개인문서ㆍ신문 등 방대한 사료를 토대로 큰 역사적 사실 뒤에 숨은 생생한 일화들까지 소개하면서 가독률을 높이고 있다. 각권 4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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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181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럽 주요국가가 참가한 국제회의가 열려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정세를 논의했다. 장 밥티스트 이사베이의 1819년 작 '빈 회의' /사진제공=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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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는 시작됐지만 누구도 미래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다. 근대 유럽인의 불안감을 보여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1818년 작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사진제공=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