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세계 경제 상황은 나치가 득세하던 1937년과 매우 흡사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가 영국 신문 '가디언' 기고에서 이같이 경고했다. 실러에 따르면 1929년 미국 대공황 발발 8년 후인 1937년에 글로벌 경제는 더 악화했다면서 무려 6,000만여명이 희생된 2차대전을 겪고 엄청난 재원이 투입된 복구작업이 이뤄지고 나서야 어렵사리 경제가 회복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의 세계 경제 상황이 그때만큼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1937년과 너무 흡사하다며 많은 전문가가 장기적 측면에서 경제를 비관하는 점을 예로 들었다.
실러 교수가 아니더라도 최근 들어 글로벌 경제에 대한 비관적 장기 전망은 여기저기서 제기되는 실정이다. '뉴 노멀(new normal)'이나 이에 앞서 나온 '장기 정체론(secular stagnation)' 등이 그것이다. 뉴 노멀은 채권운용회사 핌코의 최고경영자인 모하메드 엘에리언이 그의 저서 '새로운 부의 탄생(2008년)'에서 금융위기 이후의 경제 흐름을 지칭한 것으로 유명하다. 저성장, 저소비, 높은 실업률, 고위험, 규제 강화, 미국 경제 역할 축소 등이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계 경제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하버드대 교수)도 최근 장기 정체 가능성을 시사했다. 전반적 수요 감소와 함께 기업의 사내유보 증가, 인구 증가 둔화 등이 특징으로 꼽힌다.
실러가 지금의 세계 경제 상황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도 1930년대 말에 두드러졌던 '과소 소비'에 의한 폐해다. 그러잖아도 세계 경제는 유례없는 저금리 시대를 겪고 있다. 1990년대만 해도 평균 4%였던 금리가 2000년대 들어 2%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사실상 제로금리 상태다. 글로벌 경제의 투자 및 소비 부진이 배경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수요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인프라 투자 확대가 절실하다지만 실질적 돌파구는 열리지 않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결국 사회적 분노와 불관용, 폭력 확산이 가능하다는 게 실러 교수의 진단이다. 장기 정체론의 신드롬은 한국 경제에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투자를 촉진함과 동시에 정부 스스로 연구개발(R&D)이나 생산적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