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위기감, 북한 핵 문제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확산되는 가운데 미국 경제의 기초여건마저 흔들거리고 있다. 미국의 소비가 지정학적 요소로 휘청거리면서 미국 경제는 또 다른 침체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여건이다.
소비자 신뢰지수는 10년만에 최저치로 떨어져 전쟁 상황이 나쁜 시나리오 쪽으로 움직여가면서 미국인들의 경기체감지수가 약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뉴욕 증시는 경제적, 비경제적 요소가 동시에 악화하면서 하락기조를 지속하고, 숏세일(공매도)에 나선 헤지펀드들이 주기적으로 숏커버링에 의해 일시적으로 만회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비자신뢰지수 악화= 뉴욕 소재 민간연구기관인 컨퍼런스 보드는 2월 소비자신뢰지수가 64로 1월의 78.8에서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블룸버그 통신이 62명의 경제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이 지수의 기대치는 77이었다. 한달 하락폭 14.8 포인트는 테러가 발생했던 2001년 9월 이래 가장 큰 폭이다. 이 지수는 93년 10월의 60.5 이래 가장 낮은 것으로, 9ㆍ11 테러사건이 발생했던 달은 17 포인트나 하락했었다.
미국 경제의 버팀목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2를 차지하는 소비가 이라크 사태, 북한 핵 문제, 테러 위협, 주가 하락 등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6개월 내에 소득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소비자들의 비중은 조사가 시작된 67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일자리가 많이 있다고 생각한 소비자들의 비중은 11.2%로 지난 93년 12월 이래 가장 낮았다.
그나마 부동산 시장이 살아있어 미국인들의 부의 위축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 전미 부동산협회(NAR)이 발표한 1월 기존주택 거래 건수는 전월대비 3.0% 상승했다. 뉴욕 증시가 가라앉으면서 미국인들이 금융시장의 자산을 부동산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북한 미사일 발사 등으로 금융 시장 `흔들`=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는 국제금융시장에 악재로 작용, 독일의 DAX 지수는 6년만에 최저치로 폭락하고,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도 개장과 동시에 폭락세로 출발했다. 그러나 뉴욕증시는 오후 들어 헤지펀드들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망명할 것이라는 루머를 호재로 활용, 숏 커버링에 들어가면서 상승세로 마감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워싱턴의 기류를 강경한 방향으로 돌려놓고 있다. 아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국가원수) 취임 행사에 이웃 나라가 꽃이나 부케 또는 사절단을 보내는 것이 관례지만, 북한은 크루즈 미사일을 보냈다”며, “북한이 고립되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워싱턴 소재 후버연구소에서 “북한은 무기 확산 국가의 하나”라고 규정하고, 북한에 대한 대규모 경제원조는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을 방문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대북한 식량 지원을 재개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지 하루만에 워싱턴의 기류가 강경하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악재는 여전히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미국과 영국이 제출한 2차 결의안을 통과시키지 않더라도 미국은 군사행동을 단행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는 중동에 전운이 짙어지면서 국제 유가가 상승하고, 경제의 신뢰도가 둔화되면서,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종전의 2.9%에서 2.5%로 하향조정했다. 그는 3월 중순에 유가가 배럴당 40 달러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뉴욕=김인영특파원 in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