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8월 14일] 섣부른 민영화, 득보다 실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 일정을 발표했다. 핵심 공기업 다수가 빠져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도 있지만 정부의 의지는 강력한 것 같다. 공기업 민영화를 경제 정책의 주요 줄기로 삼고 있는 정부는 1차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이어 2ㆍ3차 방안의 밑그림까지 그리고 있다. 싫든 좋든 공기업 민영화는 우리 경제의 흐름을 좌우할 주요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중요한 점은 민영화 그 자체가 아니라 성과와 효율이다. 가뜩이나 유가 급등락과 환율 불안, 인플레이션 등이 국내 경제를 짓누르는 상황에서 비싼 수업료를 치러가며 시행착오를 겪을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명분보다 효율을 중시하는 민영화의 중요성은 세계경제를 뒤흔든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간신히 진정될 것으로 보였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장기화에 깔려 있는 프레디맥과 패니매의 부실도 따지고 보면 잘못된 민영화의 결과물이다. 프레디맥과 패니매는 미국의 국책 모기지 유동화기관으로 장기 저리의 안정적인 주택금융을 제공하는 성공적 모델로 평가받아 왔지만 실제는 딴판이었다. 평상시에는 잘 몰랐지만 회계부정이 적발되고 전체적인 금융위기 상황을 맞자 정부의 긴급구제책을 받을 정도로 부실이 누적됐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이들 기관의 채권도 수천억달러에 달해 이들이 잘못될 경우 심각한 파장도 우려된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이들 기관이 민영화 정책의 산물로 탄생했다는 점이다. 당초에는 페니매 하나밖에 없었다. 페니매는 대공황 이후 황폐해진 주택시장의 재건을 위해 미국 정부가 설립한 기관으로 주택담보대출을 하는 민간 은행에 저리 자금을 공급했었다. 정부보증 장기주택담보 대출을 지원하고 그 채권을 유동화한 페니매는 지난 1968년 민영화의 첫 단추를 끼웠다. 페니매를 민영화한 이유는 우리 정부와 비슷했다. 경쟁 원리 도입을 통한 효율성 제고와 재정 안정을 내세운 것이다. 월남전으로 연방정부의 부채가 급증하자 페니매의 장기채권을 연방 재정에서 분리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일부 작용했다. 그런데 페니매 민영화는 이상하게 진행됐다. 미국 정부는 공공적 성격의 주택금융지원을 민간에 완전히 넘길 수 없다며 두 가지 조치를 덧붙였다. 우선 서민ㆍ중산층 주거복지 지원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며 100% 정부 소유의 새로운 유동화기구인 지니메를 설립했다. 또 모기지 유동화시장에서 패니매의 독점적 지위를 견제하고자 프레디맥을 100% 민간소유로 설립했다. 패니매와 프레디맥을 100% 민간소유로 바꿨으나 영업은 정부의 신용보증에 의존했다. 정부 돈을 지출하는 이상 감독이 필요하다며 미국은 이들을 감독하는 감독청(OFHEO)까지 세웠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페니매를 민영화했지만 그 결과로 1개의 공기업은 남고 2개의 민간기업과 1개 감독기관이 더 생긴 것이다. 유사한 공공 및 민간 경쟁기관의 설립과 별도의 감독기관 신설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됐음을 물론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이중삼중의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이 전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오히려 2003년 프레디맥과 패니매의 회계부정사건을 시작으로 최근의 부도위기까지 전세계 금융시장의 잠재적 불안요소로 몰리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의 ‘민영화’된 주택금융 유동화기관들은 사적 소유와 공적 기능의 수행이라는 구조적 모순으로 정부의 지속적인 감독과 감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실화돼 국민의 부담을 배가하고 있다. 미국의 사례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구조조정에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막대한 비용을 퍼부어 민영화와 공공업무의 제도적 보완을 수행하는 경우에도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 주택금융의 사례처럼 그 결과가 경제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클 수 있는 업무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해야 할 것이다. 미국 유동화전문기관의 부실화를 계기로 국내에서 유사업무를 수행하는 한국주택금융공사의 건전성 확보를 위한 다각적인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시장의 안정을 담보할 수 있는 수준의 자본금 확충이 선결과제로 생각된다. 아울러 동 기관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 및 감독을 통해 국내 주택시장은 물론 금융시장의 안정성 확보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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