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길문화를 바꾸자] 교통문화 선진화 투자 서둘러야

지난 2월19일부터 시작한 「길문화를 바꾸자」 시리즈가 10회로 끝을 맺게 됐다.이 시리즈는 자동차 보유대수 1,000만대가 넘는 자동차 대국이면서도 교통문화 만큼은 후진국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우리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과제들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독자들은 물론 전문가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다. 특히 이 시리즈는 교통문제를 단순히 사람 중심으로 다루던 지금까지의 시각에서 벗어나, 도로와 정부정책으로까지 확대해 거시적으로 살펴보는데 촛점을 맞췄다. 시리즈를 마감하면서 관련 전문가들의 좌담을 통해 새로운 길문화 정착을 위한 과제를 제시해 본다. 좌담회 참석자 ▲柳敬洙 한국도로공사 도로연구소장 ▲黃德壽 교통안전공단 안전관리처장 ▲權寧珏 교통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黃=지난 2월19일 첫 회를 시작으로 연재된 서울경제의 「길문화 시리즈」는 교통문화를 단순히 「사람」의 문제에 국한시키지 않고 「길」로 확대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느낌을 줬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언론이 교통문제를 단순히 사람의 문제로만 인식했던 느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교통사고의 원인중 잘못된 길이 차지하는 비중도 10%나 됩니다. 잘못된 길도 교통문제의 큰 원인인 셈이죠. 서울경제의 길문화 시리즈는 이런 점에서 일반인들이나 교통정책 담당자들에게 좋은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柳=서울경제가 많은 지면을 할애, 교통문제와 관련된 문제들을 다양한 시각에서 다뤄줘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고맙게 느껴집니다. 교통문화는 시민들의 의식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교통에 국한시키지 말고 국민들의 근본적인 질서의식을 짚어볼 필요도 있었다고 봅니다. 아직 우리 국민들은 기초질서의식이 부족합니다. 어려서부터 기초질서를 몸에 배게 하는 교육이 절실합니다. ▲權=우리 교통문화가 아직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열악한 교통환경 때문이기도 합니다. 1㎢당 1,700명이라는 높은 인구밀도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도로 등 기반여건은 열악한데 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다 보니 기초적인 여건이 너무 열악한 셈이죠. 솔직히 우리 교통문제들을 연구하다 보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습니다. ▲柳=사실 우리나라의 교통의식 관련 교육은 체계가 없습니다. 운전자 교육이라고 해봤자 면허시험 합격때나 사고를 내 안전교육을 받을 때 말고는 교육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껏해야 도덕 교과서 한 두장 정도에 교통안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저희 연구소가 고속도로 운전자를 대상으로 연구해 보니 절반 정도가 고속도로 시설의 설치배경이나 의미는 물론 차선 주행방법 조차도 제대로 모르고 있더군요. ▲權=교통의 가장 근본이 돼야 할 도로체계도 사실 한심한 수준입니다. 국토가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기반시설이 갖춰진 후 사람들이 들어가 사는 형태가 돼야 하는데 우리는 그 반대입니다. 신도시가 대표적인 예죠. 인구 수십만의 어마어마한 신도시를 만들면서 막상 가장 중요한 도로 등 기반시설은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는 지금까지 교통전문가들이 도시계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한데도 원인이 있습니다. ▲柳=솔직히 우리나라는 도로가 경제적 논리보다는 정치적 논리에 의해 건설된 경우가 많습니다. 국토의 축이 되는 간선도로망을 보더라도 비효율적으로 건설돼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곳이 많은 실정이죠.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이같은 현상이 늘어나고 있어 우려되기도 합니다. ▲黃=도로를 제대로 건설하는 것 못지 않게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도로 관리가 주먹구구식이다 보니 평소 우리는 주위에서 바로 몇달전에 보수한 도로를 몇번이고 다시 뜯고 다시 포장하는 모습을 흔하게 보게 됩니다. 이렇다 보니 많은 비용이 들뿐 아니라 교통통제에 따른 엄청난 혼잡비용을 물고 있습니다. 효율적인 도로운영을 위해서는 관리체계를 일원하다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權=도로 운영측면에도 개선돼야 할 것이 많습니다. 신호체계가 대표적인 예죠. 예컨대 T형 교차로의 경우 사실상 직진하는 차량은 항상 직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의 신호체계는 좌회전때는 직진을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도로효율성이 25% 정도 떨어지는 현실입니다. ▲黃=도로표지판도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경우 대부분 제한속도가 시속 100㎞입니다. 따라서 운전자들은 고속도로에서는 무조건 이 속도까지는 달려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도로 특성에 따라 특정 구간에서는 그 이하로 속도를 제한하고 있는데도 대부분 운전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빗길이나 눈길에서 감속해야하는 규정도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산간지역이 많은 우리나라는 도로가 굽은 곳이 많기 때문에 프랑스의 예를 연구해볼만 합니다. ▲權=화제에서 좀 벗어난 얘기긴 합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는 도로가 건설되면 지역경제도 발전한다는 편견이 큰 것 같습니다. 일단 도로만 생기면 들고 나는 사람이 늘어 개발이 촉진될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해당 지역에 기반여건이 충분히 조성됐을때만 성립하는 명제입니다. 무조건 우리 지역으로 도로를 놓게 하자는 생각은 지역이기주의에 불과합니다. 다른 곳에 건설하면 훨씬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도 있는 도로를 특정지역 주민을 위해 건설한다면 국가 전체에도 큰 손실이 됩니다. ▲柳=요즘은 일부지역 주민들이 도로를 혐오시설로 인식해 건설을 반대하는 경우도 부쩍 늘어난 것 같습니다. 특히 대도시 주민들은 도로가 생기면 공해·소음 등 각종 환경문제가 생긴다며 도로건설을 반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도로가 생기면 토지사용에도 제약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죠. 산간지역의 경우 도로를 건설하면 산이나 농지 등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權=그렇습니다. 개발과 환경보전은 양립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요. 이때문에 환경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건설방안 마련이 시급합니다. ▲黃=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어차피 개발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자연에 손을 댈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발하는 노력이 중요한 거죠. 또 국민들도 무조건 자신의 입장에서만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는 방향으로 사고를 전환해야 합니다. ▲權=ITS(지능형교통시스템)으로 화제를 좀 바꿔보기로 하죠. 우리나라도 지난해 가을 ITS 서울 세계대회 개최를 계기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기본적인 도로여건이 미흡하다 보니 아직은 양적인 도로건설에 더 치중해야 할때라고 보는데요. ▲柳=제 견해는 약간 다릅니다. 도로건설과 ITS구축은 어느 것이 먼저라기 보다는 병행해야 하는 과제라고 봅니다. 실제로 저희 도로공사가 고속도로에 설치, 운영중인 첨단 도로정보 시스템들은 운전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한계는 있겠지만 ITS가 극심한 교통혼잡문제를 어느 정도는 해결해줄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黃=ITS시스템은 연간 17조원에 이르는 물류비용 절감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화물운송분야에 ITS시스템이 실용화된다면 공차율(空車率) 증가로 어려움을 겪는 운송업체들이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柳=최근 출범한 「ITS코리아」는 이 분야 발전의 큰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이 기구가 ITS의 제도적 기술적 발전에 주도적 역할을 하길 바랍니다. ▲黃=교통선진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를 개발하고 좋은 도로시스템을 갖추고 있어도 하루 30여명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교통후진국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柳=그렇습니다. 어려울수록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는 더욱 늘려야 합니다. 특히 교통분야 전문가 육성을 위해서는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필수적입니다. ▲權=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렇게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니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이번 길문화시리즈를 계기로 서울경제가 이같은 자리를 자주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정리=정두환 기자 DH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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